문학

김수영의 '일기 수필'

e길 2023. 6. 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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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형식의 글은 힘든 삶을 담담하게 수필로 적은 개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일기는 자기 폭로적이며 사실 그대로를 회고, 회상하며 잘함과 잘못을 자기 본인이 심판한다. 산다는 것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며, 문학은 그 시대의 기록물이다. 일기는 삶 그 자체의  수필이며 문학인 것이다.

김수영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8'

<시인이자 산문가인 김수영 작가는, 현실의 장벽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자유의지는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의 정신으로 그려지곤 한다.>

'바뀌어진 지평선': 부분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 ㅡ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

(삶의 자유로운 비상을 억압하는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돌, 무엇을 위해 그토록 가열하게 날아가는 가에 대한 묘사다. 세상에 배를 밀착하고 날아가는 강인한 정신에서 드러나듯, 그가 말하는 자유란 현실의 한계를 단박에 뛰어넘는 초월의 희열이 아니라, 현실의 아픔과 상처, 갈등과 고통 위를 온몸으로 밀며 나가는 기어 넘기 즉 '포월'이다. 모순에 빠지지 않는 하나의 정신적인 돌이, 김수영 작가의 모체일 것이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활이 비겁하다고 경멸하지 말아라')

<수필 본문>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제일 불순한 시간이어야 한다. 몸과 머리가 죽은 사람 모양으로 기운이 없어지고 생각이 죽은 기계같이 돌아갈 때를 기다려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세상에서 제일 욕된 시간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렇게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 하루에 서른 장(200자 원고지)을 옮기면 잘하는 폭이다. 그것도 날이나 추워지고 하면 더 하기가 싫다. '언제나 이 일을 그만두나! 어느 날에나 의무로 하는 이 답답한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하는 불평과 바람이 잠시도 머리에서 떠날 사이가 없다. 그래도 스무 장이고 서른 장이고 일이 끝나면 두발에 엔진이 달린 것보다도 더 바쁘게 잡지사로 뛰어간다. 그러나 돈 받이내기는 일하는 것의 몇 배나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돈을 받아가지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전연 무감각한 상태로 돌아간다. 무엇에 돈을 써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다정한 친구와 술을 마시게 되어서 흥이 나돌라치면, '나는 돈이 반가운 줄 몰라, 남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날뛰니까 나도 덩달아서 날뛰어보는 것이야'하고 껄껄 웃는다. 이것은 날이 갈수록 기계같이 늙어가는 나 같은 사나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서글픈 회의일 것이다"

"청춘사에서 울다시피 하여 겨우 700 환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로 선생을 찾아갔다. 장사에 분주한 그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설워진다. 도대체 미도파 백화점에 들어서자 그 휘황한 불빛부터가 나는 비위에 맞지 않는다. 침이라도 뱉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나와서, 로 선생의 말대로 '상원'에 가서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출입문을 등지고 서쪽을 향하고 앉아서, Hemingway의 The snows of Kilimanjaro를 읽었다. 순수한 시간이었다. 애인은 오지 않았지만, 애인을 만나고자 기다리는 순수한 시간을 맛보았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이라고 비웃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애인이, 벗들이 무엇이라고 비웃고 백안시하든 그것이 문제일 까닭이 없다. 이 산만한 눈앞의 현실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미라와 같은 나의 생활 위에 살과 피가 한데 뭉친 거대한 걸작을 만들 수 있느냐? 나는 이 이상 더 눈앞의 현실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 이것들을 어떻게 (담느냐?)가 문제다. 오늘은 나의 생일날이다. 수환(큰아들)에게 만년필을 고치라고 100 환을 주고 나머지 200 환을 어머니에게 내놓았다"  

(수필 감상):글쓰기와 번역

시인이자 산문가인 김수영 작가는, 6.25 전쟁 때 서울의대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를 하는 중에 이북으로 끌려갔다가, 유엔군이 평양을 장악하자 서울로 남하했다. 그 후 미 8군 통역과, 선린상고 영어교사 등을 거쳐 마포로 이사한 후 번역으로 힘겹게 가족을 부양한다. 김수영 작가에게 글쓰기와 번역은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버는 노동에 해당한다. 작품이 발표되거나 번역 원고를 넘기면 신문사나 잡지사로 찾아가 당당하게 원고료를 재촉하지만 '글을 쓰는 것보다 돈을 받아 내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며: 시여 침을 뱉어라, 날품팔이 문필가의 애환 

김수영 작가는 어느 해 성탄절 일기에서 '암만해도 나의 작품과 나의 산문은 퍽 낡은 것같이 밖에 생각이 안 든다'라고 했으나,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40여 년이 지나고 한 세대가 흐른 지금도 신선 하기만 하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작가의 일갈은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 방식과 직결된다'는 김수영 작가의 문학론이며 다분한 생활 철학이다.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산문은 전혀 가식이 없고, 유머가 여유 있게 넘친다. 김수영 작가가 토로하는 날품팔이 문필가의 애환은 '일해다 준 돈 받기'였다. 그러면서 덤핑번역, 오역 투성이의 부실한 번역 등을 함께 비판하며 '우리나라는 번역 문학이 없다'라고 단언한다.

수필에서 김수영 작가는 자신이 동경하는 시인들은 '이미지스트의 일군'이고, 자신은 매우 '수줍은 사람'이며, 멋이라면 지긋지긋해서 죽는 것 다음에 싫은 것이 '멋'이라고 말한다. 또 김수영 작가는 자본주의 보다 아내와 출판업자를 더 싫어하지만, 시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참고문헌: 문예 사조에 대한 고찰 5.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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