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문둥이 시인" 한하운과 "문둥이" 시인 서정주

e길 2023. 5. 1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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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시인은 실제 '한센' 병으로 투병하며 처절하게 '나는 문둥이가 아니 올시다'를 울부짖으며 시를 담았고, 서정주 시인은 '문둥이'라는 어둡고 처절한 운명의 고뇌를 상징하는, 저주받은 운명의 굴레 속에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을 관능적인 시로 담았다. 옛날에 사람들은, '문둥이'는 하늘의 형벌인 '천형'을 받았다고, 무시하며 학대했다.

동시대 시인이면서 '문둥이'와 인연

서정주 시인은 1915년생, 한하운 시인은 1919년생으로 동시대를 살았고 '문둥이'라는 낱말과 인연이 있는 시인, 어두운 일제강점기의 운명을 함께 겪으며 산 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연유인지 한하운 시인은 함남 함주 출신이지만 전북 이리 농림학교에서 육상선수로 학교에 다녔고, 서정주 시인은 고창 출신이어서 두 시인은 전라북도와도 인연이 깊다. 

보리밭

우리는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책이나 영화 등에서 '문둥이'라는 단어를 몇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지방에 가면 지금도 '이런 문둥이'라는 욕설 아닌 욕설을 운 좋으면 들어볼 수도 있다. '한센'병은 영어로, '나병'은 한자어, '문둥이'는 우리말 한글로 표현된다. 각기 다르게 표현되지만 '한센(노르웨이 의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한센'병으로 통일하여 부른다. 지금이야 약으로 완치될 수 있다지만, 당시에는 심신적 고통과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과 차별과 학대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면서 악천고투와 싸워야 하는 처절한 삶이었다고 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한하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감상: 절통하게 문둥이가 아니라고 부르짖고 있다. 시인은 분명 성한 누구보다도 성한 시인이다. 시인의 시는 세상의 거대한 편견에 대한, 외침이자 저항이었으며 절규였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니올시다'는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란 말이다 이 못된 놈들아'라는 절규다) 그의 작품은 '한센병'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성을 가지며, 한마디 한마디 담담하게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힘주어 부르짖고 있다.  

30여 년 전에 소록도에 갔는데 '한센'병의 잘못된 편견을 실제로 느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소록도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많은 감탄을 하였다. 특히 아름다운 나무들 사이에 한하운 시인 시비가 너무 인상 깊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를 읽으며 처절한 시구절이 가슴속에 충격으로 들어왔다.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 밤새 울었다.

(감상: 이 시는 하늘의 저주받은 운명을 지닌 '문둥이'의 모습을 빌어 인간의 본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1연에서, '해와 하늘빛'은 낮의 세계, 즉 광명의 세계를 말한다. 삶의 세계로부터 격리된 삶이다. 낮에는 사람들이 무시하고 마을에 못 들어오게 멀리서부터 돌팔매질을 한다. 무서워 사람들에게 동냥도 제대로 못하는 서러운 '문둥이'다. 2연에서, 그래도 밤에는 나가서 먹을거리 동냥해 와서 달 빛 보리밭에 앉아서 먹는다. 한 입 먹으면서 이 음식은  애기 간이라 생각하며, 빨리 먹고 나으려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이 아니다. 밤새 울었더니 목에서 피가 나와 '붉은 울음이 되는 3연'이 된다. 이 시는 온전한 인간(일제에 해방)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인 가락으로 노래하는 부분이 시적 특징이라 하겠다)

'용천배기(문둥이의 방언. 충청, 전라도)'는 보리밭에 숨어 아이들이 오면 납치해서 간을 빼먹는다는 잘못된 속설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옛날 시골의 할머니들은 남편이 어디 가고 없으면 '용천배기 같은 인간' 어디 가서 뭐 하냐는 식의 욕을 하기도 했다.

마치며

'고은' 시인은 자신이 시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중학교 3학년 시절에 길 가다가 우연히 주운 한하운 시집을 접한 일이, 자신의 영혼에 송두리째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고 회고하였다. 한하운 시인은,  그만큼 가슴으로 느끼는 훌륭한 시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는 저주받은 운명의 굴레를 처절하게 관능적인 시로 담았다. 저주받은 운명은 일제 치하의 고통이나 억압과도 연결된 생명의식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의 관능은 절제와 달관이었다.

두 시인의 '문둥이'는 시적 표현은 달랐지만 의미하는 저주의 고통은, 동시대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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