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5.18의 광주'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e길 2023. 5.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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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학살, 항쟁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의 참상은 국가 폭력, 학살이라는 인간 잔혹성의 극점, 양심이라는 빛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으로 남아있다. 괴물 '군부독재' 폭력에 맞서 '반폭력 시민민주주의 저항운동'이었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절박하고 내밀한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뚜렷한 증언 작업을 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 줄거리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소년이 온다 57 페이지)

소년이 온다

5월 18일. 함께 시위대에 휩쓸렸다가 총을 맞고 쓰러진 친구 '정대'를 찾는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정대의 혼, 김은숙, 나, 임선주, 동호 어머니 등의 목소리로 교차한다.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 관리하는 일을 돕는 동호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초를 밝히던 중 친구 정대의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오늘은 위험할 수 있으니 집에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남아 있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동호는 숨을 거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며 끝나지 않은 광주를 겪는다. 저자는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픔을 나눈다.

소설의 구성과 의미

1장 '어린 새'는 동호의 이야기, 2장 '검은 숨'은 유령이 된 정대, 3장 '일곱 개의 뺨'은 치욕의 삶을 사는 은숙, 4장 '쇠와 피'는 1990년의 '나', 5장 '밤의 눈동자'는 광주에서의 증언을 요청받은 2000년대의 선주, 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 소설의 새로운 변화 지점을 보여주는 역사적 시공간의 확장과, 증언 서사 호소력의 힘이 크다. 역사적 사건들과 국가 폭력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활용하여, 사회 역사적인 시공간을 직접적으로 작품의 무대로 끌어들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끔찍한 폭력과 학살에 대한 증언이 '광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폭력적 문명세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기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가슴 아픈 역사이다. 1년 반 동안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는, '아직도'광주'는 계속되는 이야기이며, 죽음과 싸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트라우마와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피해자들이 있으며, 그중에서 자살률이 11%나 된다고 말한다. 끔찍한 주검과 피비린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지금도 5.18이 진행 중인 것이다. 진단으로는 나올 수 없는, 뚜렷한 병명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주장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매일 울었으며, 어떤 날은 딱 몇 줄 쓰고 하루종일 울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너'라고 자주 나오는데 동호를 부르는 호칭이라고 하며, '너'라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너'라고 부를 때는 마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러서 살아있게 하기 위한 마음이며, 안타까워 간절히 부르면 그 '소년이 온다'는 작가의 믿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말을 심장에 받아 적듯이'

' 소설을 쓰는 동안 그 묘지에 가끔 찾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날씨가 맑았다. 향을 피운 뒤 눈을 감고 서 있으면, 온 세상이 눈꺼풀 바깥으로 밝고 찬란한 주황색이었다. 마치 아주 따뜻하고 친근한 수많은 존재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온기 속에서,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들의 말을 내 심장에 받아 적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것이 과연 진실로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해도, 어쨌든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고, 인간의 참혹에서 존엄으로, 그 아득한 절벽들을 연결하는 허공의 길뿐이라고'. (한강 작가의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 소감문)

마치며

한강 작가는 고향은 광주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 이전에 상경하여 직접 사건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년을 보낸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이고, 집필 과정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다고 에필로그에서 서술한다. 수많은 압박에도 소설가 한강은 꿋꿋하게 불굴의 정신으로 작품을 완성해 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도 '어둠 꽃'이라는 5.18 소설을 집필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도 묘지에 찾아가 향을 피우며, '그날'의 못다 핀 청춘들의 진실을 담으려 노력하는 작가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묻어나는 슬픈 소설이다. '백지연' 문학 평론가는, '증언하는 자의 소명의식과 듣는 자의 상상력이 치열하게 어우러지는 간절한 고백의 서사는 잊을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고통스럽게 되살린다. 물방울이 내쏘는 햇빛의 파편에도 눈이 시린 순결한 '어린 새'의 흔적을 좇는 이 소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라고 추천 글에서 밝히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광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 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말한다. '죽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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