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도자기 박물관 소설집 작품들에서는 고통은 관계에서 발생하고, 그 관계는 대체로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현재의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오래전 잠시 타올랐다가 이미 꺼져버린 사랑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잿더미가 된 사랑을 시간 속에 묻혀놓고, 대신 오랜 세월 그 흔적을 되새기고 있다.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남긴 흔적은 이 소설집 곳곳에 있다. (1부에서 이어집니다)
'반달'은 그 자체로 결핍
동요 '반달'의 가사를 차용하여 캄캄한 밤하늘과도 같은 삶을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그려낸 '반달'은, 윤대녕의 소설 세계가 이전보다 정교하고 치밀해졌음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인 것 같다. ‘반달’의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차례 남자친구를 바꾸는 어머니와 불화하다가, 군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여행을 떠난다. 아들은 차가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동요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존재의 결핍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2절 가사까지는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 불을 끄고 눕자 기다렸다는 듯 도둑고양이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어머니도 나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구한테나 고독이고 고통이겠지’,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뒤척인다. ‘반달’은 그 자체로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가. 산다는 게 반쪽의 영혼이 또 다른 반쪽의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자기 박물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통을 감히 이해했노라고 말은 못 하겠다. 이해하려는 단계에도 나아가지 못한 데는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통을 오히려 덤덤히 드러내고 있는 차분함이었다. 고통을 중심에 놓고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오히려 진부했을 터인데, 추억 속에 갇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툭 던져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나와 밀접한 것도 있지만 동떨어지거나 상상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내 주위와도 밀접한, 그렇기에 더 애잔하고 절절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기이한 사연이 있다면서,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같았다. 주변에서 일어날법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의 추억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 해설에서는 “윤대녕의 주인공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일상의 활력’이나 ‘구원의 여신’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의 오롯한 재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주인공들이 추억하는 장면과 비슷한 혹은 상관없는 나의 추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상처가 더 이상 덧나지 않는 빨간 소독약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도 없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뚝 떼어다 보여주며, 비탄에 빠져있는 현재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이 우울하지 않게 다가온 것은 저자의 절제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멈출 때 멈춰 서고 철저히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때론 냉정하고 무관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런 절제 속에 담긴 문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독자를 우울함으로 빠뜨리지 않는 능력. 온갖 고통을 안은 주인공들을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무엇보다 좋은 것 같았다. 삶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유려하고 아련한 문장들이, 상처 어린 추억이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주는 빨간 소독약 같았다.
'사랑'이라는 불쏘시개
윤대녕이 그려온 인간들은 저마다 남모를 사연을 안고 방황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생적인 결핍과 상실감으로 수렁에 빠지거나 또 다른 출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이다. 이전의 소설과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다른 차원의 깊이와 묘미를 선사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중력에 붙들려, 미래를 향해 상승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소설 속 인물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지난 사랑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병중에 있는 아버지의 묫자리를 둘러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두 형제의 대화로 구성된 ‘구제역들’의 주인공은, 10년 전 헤어진 여성과의 추억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통영-홍콩 간’의 주인공에게 10년 전 홍콩에서 만나 함께 1년을 살고 헤어진 여성은 지속적인 고통의 원천이다. 가족력인 간경화로 생명의 불꽃이 꺼지고 있거나(통영-홍콩 간), 가정폭력으로 이혼했거나(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가족과의 정서적 친밀도가 떨어진(문어와 만날 때까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삶은, 혐오와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견뎌내야 할 짐이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 않은 ‘검역’과 ‘도자기 박물관’의 주인공들도 삶에 열기를 불어넣어 줄 ‘사랑’이라는 불쏘시개가 필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소설집 속 다른 작품들의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자기 박물관’의 과거 지향은 자신이 사랑했거나 몰입했던 대상을 다시 소유하려는 갈망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순간에조차 오래 머뭇거리거나, 다가가는 대신 오히려 뒤로 물러선다. ‘도자기 박물관’이 그리고 있는 사랑은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제 삶에 미친 영향을 곱씹어 내면적 성숙에 도달함으로써 완성된다.
마치며: 삶 자체를 자기 색깔로 끝까지 밀어 입히는 윤대녕 작가
윤대녕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뛰어난 감각을 지닌 작가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의 감성은 여전히 섬세하다. 작가의 치밀하면서도 내밀한 문장을 읽는 맛이 즐겁다. 윤대녕은 삶이 아름답다거나 살아볼 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도자기로 인해 아내를 잃고도 도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도자기 박물관’의 주인공처럼, 삶 자체를 자기 색깔로 끝까지 밀어 입힌다.
윤대녕의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은 윤대녕의 색깔과 문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산문과 상징이 많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에서는 평범한 인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소설이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허구와 상상에서 구성되고,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독특한 인물과 사건의 비유가 독자들의 만족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대녕의 ‘도자기 박물관’은 속이 꽉 차고 단단함이 스토리 곳곳에 가득 스며 있다.
반응형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반지의 제왕"의 스토리텔링 (2) | 2023.05.09 |
---|---|
권여선 소설 "봄 밤", 김수영 시 "봄 밤" (0) | 2023.05.06 |
윤대녕 작가의 단편 소설 집 "도자기 박물관" (1부) (0) | 2023.05.03 |
AI 시대의 '고정 관념'과 조신호 시인 시 "신념" (0) | 2023.04.30 |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과 '수련 별곡' (0) | 2023.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