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과 '수련 별곡'

e길 2023. 4. 2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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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서구의 상징주의 시론을 받아들여 초기에는 무한 탐구로, 후기에는 순수시, 절대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무한 탐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탐구이고, 순수 시론은 관념을 뺀 언어 만으로 된 무의미의 시다. 무한은 영원을 뜻하며, 바로 무의미 시를 말한다.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순결한 순수시

('꽃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느님'이 시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향해 모든 이미지가 집중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에 나오는 하나님은 '늙은 비애, 푸줏간의 살점, 놋쇠 항아리, 어린 순결, 연둣빛 바람'이다. 이 시에서는 은유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미를 강조한다. 'A는 B이다'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A는 하나님이고, B는 하나님에 비유된 이미지들이다. B는 늙은 비애, 묵중함, 순결함, 연둣빛 바람으로 비유되어 있다. 또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에서 유사한 병치가 발견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어서는 하찮은 푸줏간의 살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화자의 진정한 속 뜻은, 하나님을 놋쇠 항아리처럼 묵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화자의 인식은 대낮에도 옷을 벗을 만큼 순결성을 지닌 존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연둣빛 봄바람의 이미지는 언제나 순결한 존재로 맑고 신선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수련

이 작품은 무척 강한 비유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여러 사물들의 외연이 보여주는 심상만 음미하면 될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비유적 이미지와 서술적 이미지'는 무엇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자족적인 즉 두 개의 심상으로서만 거기 있을 뿐이다. 이 두 개의 심상은 비유가 아니고 다만 서술일 따름이다. 이런 두 심상은 아주 순수한 심상이 된다. 이리하여 이 시는 심상의 입장으로서는 순수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별곡>

바람이 분다/ 그대는 또 가야 하리/ 그대를 데리고 가는 바람은/ 어느 땐가 다시 한번/ 낙화하는 그대를 다시 데리고 오리/

그대 이승에서/ 꼭 한번 죽어야 한다면/ 죽음이 그대 눈시울을/ 검은 손바닥으로 꼭 한번/ 남김없이 덮어야 한다면/ 

살아서 그대이고 받든/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그대 이승의 하늘/ 그 떫디떫은 눈웃음을 누가 가지리오?/

닫힘으로써 열리는 꽃 수련

('청순한 마음'을 가진 사랑하는 여인을 노래하는 시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만 자연의 섭리 때문에 언젠가는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잘 표현한 시다. 소중한 사랑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짐을 걱정하는 것은, 김춘수 시인의 '관념 공포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력이 2차 세계대전의 압력 때문이고, 역사가 쓰고 있는 탈이 '이데올로기'여서 도피주의자가 되었다는 시인의 관념 공포증이 그것이다. 시의 제목인 '수련'은 다른 꽃잎과 다르게 꽃잎을 떨구지 않고, 지는 날 물아래로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비슷한 것 같지만 연꽃 하고는 다르며, 옛사람들은 수련을 잠자는 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것은 정오쯤에 꽃잎을 활짝 열었다가 해 질 무렵 꽃잎을 닫아, 마치 잠을 자기 위해 문단속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 낮이 지나면 어김없이 수련은 잎을 다문다. 그리고 해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눈을 감기 시작한다. 닫힘으로써 열리는 꽃, 닫힘이 곧 열림이라는, 닫힘으로 열려서 완성된 꽃이 바로 수련인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하나님'은 굳이 기독교 신앙의 대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개념의 '신' 혹은 '절대자'의 개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시는 종교적 한계애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종교시가 그렇듯, 시가 종교의 틀속에 갇혀버리면 시는 주눅이 든다. 그래서 시가 아닌 고백글이 되고 시의  당당한 자유와 혁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시는 종교라는 틀속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종교의 영역을 존중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는 달콤한 서정의 유혹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을 경계한다. 지적 탐구와 근원의 끝없는 의문을 통해 시의 영역을 확대한다.

시인의 '수련별곡'은 대구 동성로의 2층 찻집 '세르팡'에서 시작된다. '세르팡'이란 찻집 이름도 시인이 지었는데 '뱀'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일본의 유명한 잡지 이름이기도 하다. 이 찻집의 배화여고 출신 미모의 여인이 '수련별곡'의 주인공이라 한다. 김춘수 시인이 '나의 나타샤'라고 부르던 수련에게는 시인이 정신적인 지주였다. 시인의 삶과 문학사에 '꽃'을 이야기하고 '처용단장'을 논한 '세르팡'의 찻집은 시인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였던 것이다. 

마치며: 무의미 시는 '의미 근원의 세계이며, 있음의 어머니다'

김춘수 시인은 서정주, 김수영 시인과 함께, 우리나라 해방 이후 시문학에 가장 영향을 미친 시인이라고 한다. 김춘수 시인의  순수시론은 관념을 뺀 무의미 시를 말하는데, 무의미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 근원의 세계이며, 있음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과 수련별곡은 대표적인 무한 탐구의 시다. 우리는 신을 말속에 가지지 못한다. 사물도 말속에서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이름만으로는 존재의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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