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과 여성주의가 합쳐진 '에코 페미니즘(Eco feminism)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도본느'가 처음 사용 하였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산업문명 속에서 여성과 자연이 비슷하게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시각에서 불려졌다.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에서 '생태주의' 환경 메시지를 담은 자연 친화적인 작품이 많은 것은, '자연은 생존의 수단이면서 재해와 죽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문명을 버리고 살 수 없듯이 문명도 자연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조건 베고 땅에 구멍을 파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으로 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미야자키 감독은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10살 난 친구 딸에게 '하고자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며, 이때의 여성 캐릭터는 강인하고 지혜롭게 그려진다. 디즈니의 고정된 성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와 차이를 보인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에, 생물들 간의 관계 및 그 환경을 다루는 생물학의 한 분야인 '생태학(Ecologg)'을 접목시켜 에코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강하게 주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사고로 인해 환경 재앙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대안을 제시하며,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성찰한다.
'황금만능주의'와 본연의 자기 '이름'
마법에 걸린 '하쿠'는 원래 '강의 신'이었지만 인간들이 강에 버린 쓰레기로 인해 오물의 신이 되었다. 치히로가 도와줘서 오물을 빼내자 많은 플라스틱과 쓰레기가 나온다. 배금주의와 많은 쓰레기를 초래하는 대량 소비 문명을 표현한 '가오나시'는, 금을 주고 인간을 잡아먹는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외로운 가오나시는, 치히로의 호의와 호감에 너무 고마워 황금을 선물하는데 치히로는 거절한다. 치히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가오나시는 황금만능 주의에서 벗어나 다시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캐릭터로 변화한다. 치히로는 이름을 빼앗기고 '센'으로 불리는 것을 하쿠의 지혜로 깨닫게 된다. 하쿠는 모두가 잠든 아침에 치이로를 불러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만나게 해 준다. 이름을 빼앗겨 자기 본모습을 잊은 것도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잃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치히로는 자기 본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꼭 간직하고 있다가 탈출할 수 있었다. 이름을 기억한 가오나시도 치히로의 도움으로 마법의 악당 소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컨셉은 문명의 발달로 자본주의가 자연을 파괴시키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환경 문제에 관한 통찰로 사회적 반향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자연과 환경에 더해 예술성과 오락성을 풍부하게 담아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명실 상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성장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치히로, 가오나시, 하쿠 모두가 성장하는 긍정적이고 참신한 결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인공 히치로는 두려움에 맞서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극복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찾아서 더 강하게 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작품 중에서 가장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캐릭터와 배경을 통해 주제의식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 두면서도, 궁극적인 교훈은 뚜렷하게 전달한다는 점이, '센과 히치로의 행방불명'을 높게 평가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연출, 작화, 디자인, 미술, 음향, 음악 등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가오나시와 오물신이 치히로와 관계되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중반부는 각본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고, 부상당한 하쿠를 위하려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다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도 쥐와 까마귀로 변한 보우와 유버드를 통해 훈훈하고 유머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와 배우고 성장하려는 '히치로'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앞서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웹툰 등 일본 유학을 가서 배우려는 우리나라 젊은 학생들이 많은데, 그 용기를 칭찬해주고 싶다.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나라지만, 배워야 된다면 배워서 그 일본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우리나라가 앞서있는데, 음식 문화와 애니메이션 등은 아직 밀리는 게 현실인 것 같다. 세밀하게 학습하고 연구해서 다른 나라에 앞서가는 강한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는 길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높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히 개인적인 간절한 소망을 담아 포스팅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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