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춤의 미학" 시인
술과 클래식 음악을 평생 좋아했다는 '순수시의 대가' 김종삼 시인은 황해도 은율 출생이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영화 조감독으로 일하였고, 사사를 하기도 했다. 생략과 침묵의 '감춤의 미학'을 중시하며, 초기 전봉건, 김광림 등과 후에 문덕수와 김광림과 3인 연대 시집을 내기도 하는 등 현대시 발전에 기여했지만 과소 평가된 측면이 있다.
<물통>
희미한/ 풍금 소리가/ 툭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하여금 따우에선/
(갈래; 자유시, 서정시/ 율격; 내재율/ 제재; 물통/ 주제; 평화롭지 못한 현실의 안타까움)
'물통'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인식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라는 극히 인간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구절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물은'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김종삼 시인 특유의 극단적 비약과 암시, 모호한 구문들은 분명 생략과 침묵으로 향하고자 하는 '감춤의 미학'과 연관이 있다. 그 예로, 시적 화자의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는 그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살았다는 자기 성찰적 이면서, 한편으로는 '물'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이란 뜻을 감춰 두었기 때문이다. 1연에서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풍금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외로운 현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김종삼 시인에게 풍금이 끊어진다는 것은, 삶의 고뇌가 심하고 아무 흥미가 없다는 뜻을 말하려는 것 같다. 2연에서 화자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스스로 자문한다. 이에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대답하지만, 몸과 영혼의 갈증을 가시게 했다는 뜻이 있다. 시인의 시를 짓는 일을 통해 인간들에게, 영혼의 고독과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였다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사랑과 자비의 위대한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연은 문장이 종결형으로 끝나지 않아, 시의 모호성을 시인 특유의 '생략과 침묵'으로 끝맺음한 것 같다. 시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 보면 '아직도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다'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통을 길어다 주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통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음을 '침묵'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침묵과 생략
술과 클래식 음악을 평생 좋아했다는 '순수시의 대가' 김종삼 시인의 작품들은, 의미를 새길수록 전율이 느껴진다.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비약과 암시, 모호한 구문들은 분명 생략과 침묵으로 향하고자 하는 감춤의 미학'과 관련이 있다. 이 '침묵과 여백'은 시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시인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은 독자들이 알아서 느끼도록 배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 '물통'은 김종삼 시인의 시론이 포함된 자신의 자화상을 시 속에 그려 넣었다. 목마른 인간들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것이 김종삼 시인의 시 이면서, 그의 인생이었다.
과소 평가된 김종삼 시인
김종삼 시인은 말할 수 없는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을 살아 가는데 '술'은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요 도피처였고,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초기 순수시'를 벗어나, 점차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는지 모른다. '풍금 소리가 툭툭 끊어지고'있는 시대의 불안과 현실적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시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작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는지 모른다. 그런 아픔이,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미를 승화시켜 독자들에게 울림이 있는 선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김종삼 시인은 30여 년의 창작 활동 기간에 비해,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리 많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인은 나름의 독특한 시적 성취를 보여 주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 현대시의 발전과 영역 확장 그리고 질적 심화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삼 시인은, 동시대의 김수영, 김춘수 시인보다 과소 평가 되었다는, 개인적인 사견을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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