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오감' 소설, 윤대녕의 "상춘곡"

e길 2023. 4. 1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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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곡'은 말을 건네는 방식의 글쓰기로, 서간체 여로 소설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고백의 화법으로 전하는 편지체 형식의 소설로, 선운사 동백장에 열흘동안  머물며 그리운 '당신'에게 쓴 편지다. 편지는 그녀와의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선운사는 화자와 그녀가 인연을 맺은 곳이다.

공간적 상상력과 회화적 묘사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편지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전부터 나는 당신께 한 번쯤 소리 나는 대로 편지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막걸리 먹고 취한 사내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말입니다. (중략) 열흘 전, 실로 칠 년 만에 당신과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내게 벚꽃 얘기를 하셨습니다. 4월 말쯤 벚꽃이 피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남으로 내려가 벚꽃을 몰고 등고선을 따라 죽 북향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개화 남쪽 지점을 당신의 고향으로 정한 겁니다. 이곳 선운사는 십 년 전에 우리가 처음 안연을 맺은 곳이 아닙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문득 잠든 내 얼굴에 감겨드는 이상한 빛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지요. 그것은 아주 은은하고 부드러운 생기가 느껴지는 빛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머리맡 문살 창호지에 바늘 끝 같은 것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 같았습니다. 오래 그 소리에 귀를 던져주고 있다가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았지요. 그것이 문살 창호지를 투과해 들어오는 연둣빛 봄 햇살 소리였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중략) 시간이 가면서 얼굴에 휘감겨 있던 빛은 서서히 풀려나가 창호지에서 미세하게 타닥거리던 빛발 소리도 차츰 엷어졌지요. 그리고 곧 나는 알게 됩니다. 그것이 멀리서 당신이 오고 있는 소리이며 색깔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선운사 만세루

오감으로 묘사한 운명과 인연

타고 남은 것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다시없는 걸작을 탄생시켰다는 선운사 '만세루' 앞에서, 화자는 아마도 이미 어긋난 만남을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어긋난 인연과 각자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진실도,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하자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상춘곡에는 오감으로 빚어낸 시적 묘사가 가득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명주실'과 '짚신의 서걱거림'으로, 술집 주인 여자의 노랫소리는 '왕겨를 털어낸 겨울 찬 사과 맛'으로 청각과 미각을 적절히 아우른다. 석상암 요사채에서 어느 날 아침에 들었던 '이상한 빛의 속삭임, 은은하고 부드러운 생기, 타닥타닥, 연둣빛 봄 햇살' 등으로 만들어 낸 시적 묘사로 오감을 자극한다.

불교와 시뮬라크르

시적인 문체로 쓰인 아름다운 이 작품은 불교적 색채가 진하게 배어있다. 화자가 기다리던 벚꽃을 어둠 속 만세루 안에서 본 것도 불교에서는 '마음'의 결과이다. 이런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윤대녕의 소설에서,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더불어 사용되는 특성이라고 하겠다. 또한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윤회사상과 영원성에 대한 탐구의 회귀형 글은, 윤대녕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회화적 감수성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평론과 작가의 말

평론가 김윤식은, 그의 문장은 '언어'라기보다는 차라리 '음악'이라는 극찬을 했다. 윤대녕의 글쓰기는 매우 독특하다. 마치 음악과 같은 리듬감 있는 문체 속에 다양한 이미지들이 부유한다. 상춘곡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 사이의 관계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평론가 김화영은, '윤대녕은 시인보다는 화가에 가깝다. 그가 화가라면 무엇 보다도 인상주의 화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힘을 빌려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세상 만물의 덧없음을 인식시켜 준다'라고 말한다. 조연정 평론가는, '어긋난 인연을 마음속에 묻고 그저 말없이 서로의 생에 대해 구경꾼이 되자고, 화자는 깨달았을 것이다. 상춘곡은 이렇게 청춘의 불안과 그 이후의 체념과 그리고 여유까지, 인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라고 하였다.

윤대녕 작가는  2007년 인터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설로 옮기고 싶다는 열망이 최초로 소설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어요. 저는 소설에서 줄거리가 중요하지 않아요. 순간적인 어떤 것을 독자의 기억에 남기고 싶고, 너무 빨리 지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감정의 형상을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었죠. 저는 요즘 내가 쓰는 소설은 잠시 왔다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담아두는 사적인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가로 전 지금까지 어떤 소설가도 쓰지 못했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소설이라고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소설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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