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생명 파" 시인, '깃발'의 유치환

e길 2023. 3. 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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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문제, 생명의 근원적 탐구와 창작활동의 중심 과제를 인간과 그 생명 자체를 표현하는 '생명파' 시인 유치환.  1936년에 발간된 '시인 부락'은 동인인 서정주, 유치환에 의해 주로 전개되었으며,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과 삶의 고뇌를 노래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유치환 시인의 지사적 기품

유치환 시인은 신체호적 지사 기질을 끝까지 밀고 나간 독특한 시인이며, 자학과 분노 그리고 저주라는 예언자적 지식인의 역할을 다한 대표적 시인이다. 시인의 자학과 분노는, 그의 본래 자아가 일상적인 자아에 의해 깊게 침윤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으며, 일제 압제의 삶에서 항상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그의 본래의 자아는 거짓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대립된 두 개의 자아는 언제나 서로 지켜 슬프게 살고 있다. 그러한 본래의 자아(본성)를 불가능케 하는 것을 그는 증오하고 거기에 분노를 터트린다. 그의 분노와 자기 학대는 그의 생명력이 밖으로 크게 확산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징벌이며, 그의 시가 시로써 품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선비로서 역사 앞에 그의 신명을 던지지 못한 것을 쓰디쓰게 확인할 때였다(자기 학대) 

                                                    (청마 문학관)

 

한국 근대 문학사의 거목, 청마 유치환 시인의 '깃발'

해방 직후의 혼란상과 자유당 말기의 부패상에 대한 시인의 절규는, 그의 자기 학대와 자기 방기의 계속적인 표현이다. '사구에 백골을 쪼이리라'와 '생명의 서'와 같은 자기 학대는 본래의 자아를 위해 온몸을 던질 수 없는 유치환 시인의 절규다. 자기 학대의 대립으로 '이념의 푯대'가 존재하고, '갯벌'에서 가장 명료하게 전개된 그의 푯대는, '푸른 해원(바다의 근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근원. 본래의 자아를 향한 향수)의 손수건이다. 여기서 '깃발'은 이상향을 동경하는 순정을 뜻한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펄럭이는 향수의 손수건이지만, 끝내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순정과 애수의 깃발이 된다. 그의 생명에 대한 열애는 일종의 범신론적인 자연애이다. 시인의 생명 시학은 지사적인 고고함이나 예언자적 분노를 표출하며, 허무의 극을 노래한다. 그의 세계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 정립하는 회귀적 세계(유교적 세계)라고 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

'깃발'에서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향수, 그리고 그것에 도달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시어의 철저한 절제와 표현의 묘를 살려, 깃발이 갖는 이미지를 선명하고도 생동감 있게 승화시켰다. 시인의 이상향의 동경과 높은 이념이 외롭고 애달픈 것임을 현실과 이상, 좌절과 염원을 대응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강한 애착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초기 시의 주된 정조인 연민과 애수의 서정을 통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를 표현했다. 비유적 비교와 반어적 대조를 이루었다. 체험의 윤리적 의미를 중시한 수사적 차원의 방법으로, 진술 대신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중첩적이고 시적 긴장의 이미지는 '아우성, 손수건, 순정, 이념의 푯대, 애수, 마음' 등 시어에 연결되어 완벽한 표현을 하였다. '깃발'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파악도 참신하고 신선하다. 곧, 시인의 높고 그윽한 이념이 한없이 외롭고 애달픈 것임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인간의 심리 내부를 깊숙이 파고든, 낭만적 이면서 역동적이고 상징적으로 멋지게 표현한 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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