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할머니의 '회한'

e길 2024. 3. 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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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의 할머니

어느 버스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며 누군가를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유인즉 이렇다.

 아침 8시경 승용차 한 대가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아니 길 한가운데 정차를 했다.
그리고 우측문이 열리고 한참 시간이 지체된 후 할머니 한분이 차에서 내렸다.

연세는 팔순이 넘고 옷은 그런대로 깨끗하게 입은 할머니였는데,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자 승용차는 쏜살같이 터미널을 도망치듯 떠나갔고, 그 자리에 할머니는 양손에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길 가운데 서 있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위험을 느낀 택시기사님들이 할머니를 부축하려 했는데, 황당한 일이 생겼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여 단 3~4미터 거리를 20여분을 소요해서야 터미널 주변 의자에 앉을 수가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의정부에 갑니다.'
'이렇게 불편하신데, 아까 그 승용차 주인은 누구세요.'
'예, 우리 아들이에요.'
'할머니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 아들이 불편한 엄마를 길 한가운데 버리듯이 내려주고 황급히 갈 수 있나요.'
'예, 아들이 바빠서 그랬어요. 내가 그냥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의정부엔 왜 가시는데요.'
'예. 우리 딸이 거기 살아요. 딸이 보고 싶어 내가 간다고 했어요.'
'의정부에 가시면 딸이 나온다 했나요.'
'전화하면 데리러 올 거예요.'

주위의 사람들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매표소에서 의정부 표를 사고,
터미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숨도 쉬고 할머니 딱한 사정을 애처로워했다.

마침 휴가 가는 군인이 있어 주위사람들이 부탁을 했고, 군인아저씨 고맙게도 할머니를 부측해서 버스에 오르긴 했는데~~.

그 군인도 할머니와 목적지가 다른, 중간에 내린다는데......
할머니 의정부엔 잘 가셨는지 진짜 할머니 말씀대로 딸은 마중을 나왔을지...

 

인간의 도리


그래도 아들을 두둔하시는 우리들의 어머니.
걸음도 겨우겨우 걸으시며 아들이 불편할까 아들집을 나와서 딸래 집에 가실 때, 그 아들 마음은 어떠하며 그 엄마 마음은 어떠할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동물과 달라야 하건만 '개'만도 못한 사람임이 부끄럽다.
그 아들 그 딸이,

나중에 엄마 돌아가신 뒤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들은 자식 덕을 보려고 키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대접받으려고 키운 것도 아닐 텐데...

 

'할머니 건강하세요. 인간이 인간답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들의 할머니(Stock Photos)

 

<할머니의 회한> e길. 시

 

아들 집 창문 위에

눈물짓던 바람

낯선 

산마루 돌고 돌아

가슴으로 토해내는 울음소리

 

녹차가 햇살과 바람 녹여내듯

회한은 왜 뒤늦게 우러나는가.

오래 살았구나

여기저기 

떠도는 어두운 그림자

 

나를 버릴까

기차 타고 멀리 더 먼 곳

그러다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생각을 멈추자

 

다리가 있어 갈 수 없고 

눈이 있어 볼 수 없는 

지금은

아득한

흔들리며 가는

 

있던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

또한 지나 가리라

바람 한 줌 잡지 못해

빈손뿐인 허공

 

가야 해  

무거운 마음 짐

가볍게 지고

하나씩 떨구면서

한걸음 한 걸음씩 돌아서 간다.

 

(감상: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마지막까지 자식 걱정뿐이다. 오갈 곳 정한 곳 없이, 자식 며느리 눈치 보며 살아가는 노후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마치며

회한(悔恨)은 '뉘우치고 한탄함'을 뜻한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 하며 살았는데, 말년의 부모는 자식들 더 잘해주지 못해 한탄하며 가슴 아프다. 

 

우리는 자식 된 도리를 다 하고 있는가?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다.'

(한시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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