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여성의 언어' 시인 김혜순 (2)

e길 2023. 7. 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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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작가는 1955년 경북 울진 출신이며, 여류 시인이자 교수이며 평론가이다. 1980년대 시인인 김혜순 작가는 먼저 '문학 평론'으로 입선하면서 비평가로 등단했고, 이듬해인 1979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9년 시집 '죽음의 자서전'(영문제목: 'Autobiography of Death')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알레고리: 풍유

알레고리('우화'라고도 함)란, 의도하는바 본래의 의미는 숨기고 다른 말 또는 이야기를 내세워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비유법이다. 알레고리는 표면적으로 전개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정황과 이면에 숨겨진 추상적 의미의 층이 통상적으로 존재한다.

<죽은 줄도 모르고> 김혜순. 시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황급히 일어난다

텅 빈 가슴 위에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메마른 머리칼에

반듯하게 기름을 바르고

구데기들이 기어 나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쏟아붓고

죽은 발가죽 위에

소가죽 구두를 씌우고

묘비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먼지를 털며 돌아온다

죽은 여자의 관 옆에

이불을 깔고

허리를 굽히면

메마른 머리칼이 쏟아져 쌓이고

차가운 이빨들이 입안에서 쏟아진다

그다음 주름진 살갗이

발아래 떨어지고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다시 죽음에 들면서

내일 묘비에 새길 근사한 

한 마디 쩝쩝거리며

관 뚜껑을 스스로 끌어올린다.

 

(감상: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회사원의 무의미한 일상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좀비처럼 살아가는, 욕망에 구속되어 끌려다니는 삶을 시화했다.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붓고, 죽은 발에 소가죽을 씌우고'는 실제 좀비처럼 표현한다. '걸어 다니는 시체'인 것이다. 현대의 직장인들의 시간 되면 가고, 오고, 먹고, 자고..... 너무 뻔한 일을 '알레고리'로 표현한 작품이다.

 알레고리는 본래의 의미를 숨기고 다른 이야기로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비유법인데, 시에서 의도를 직접 들어내면 독자는 호기심도 없고 상상도 안 하게 된다. 그래서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알레고리'의 목적이다.

 

'삶의 일생은 이렇듯이 참담하게 죽어있는 상태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침대에서 일어나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는 내장 속에 아침 식당의 우유를 쏟아붓고 죽은 발에 구두를 신고, 묘지나 다름없는 거리로 나오는 한 사내의 무자각적인 반복의 출근과 퇴근에서 시인은 카프카적인 사망선고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악마주의가 도리어 인간 회복을 호소하는 역설인가.'

(1998. 10 14. 고은)

 

나이면서 타자이고 내면이면서 외부인 몸

 

'내 안에는 무한히 많은 타자들이 나의 이름으로 산다. 나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나에게 일관성이란 없다. 나는 무수하다. 나는 나와 접촉하면서 말한다. 나는 나에게로 나와서 나에게로 돌아간다. 그 많은 '나들'은 모두 다른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한 편 한 편의 나의 시들은 비체계적이고 단편적이다.'

(김혜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1

아침 일고여덟 시경

나는 생각한다

서울에서 지금

일천 이백만 개의 숟가락이 밥을 푸고 있겠구나

 

동그랗구나

숟가락들엔 모두 손잡이가 달렸다

시끄러운 아스팔트 옆

저 늙은 나무엔 일천 이백만 개의 손잡이가 달린 이파리들이 달렸다. 

 

2

하늘이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환하게 내다 걸면 태양이 일천 이백만 쌍

우리들 눈 속으로 떠오른다 그러면

 

서울 사람들, 두 귀를

가죽배의 방향타처럼 쫑긋거리며

이불을 털고 일어난다

 

바람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그대 숨이 내 숨으로

들어오면 머리 위에서 신나는 풀들이

파랗게 또는 새카맣게 일어선다 오오

 

그러다 밤이 오면 죽음이 오백 년 육백 년 전 할아버지의

배꼽을 지나 내 배꼽으로

들어오고 일천 이백만 개의 달이

우리의 가슴속을 넘나들며 마음 갈피갈피

두루두루 적셔준다

 

한밤중 서울의 일천 이백만 개의 무덤은 인중 아래

모두 봉긋하고 오오오

또 한강은 일천 이백만의 썩은 무덤 속을 헤엄쳐 나온

일천 이백만 드럼의 정액을 싣고 조용히 내일로 떠난다

 

다시 하늘의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내다 걸면

일천 이백만 쌍의 태양이 눈을 번쩍 뜨고

저 내장들의 땅속 지하 삼천 미터 속까지

빗살무늬 거룩하게 새겨진다.

 

(감상: '우파니샤드'는 힌두교 사상으로, '나와 우주는 하나다. 신과 나는 하나다'라는 사상이다. '우파니샤드, 서울'의 시에서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경전으로 서울을 선택하고 단지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신과 타자가 보이는 풍경 그대로를 탐색한다. 

시는 시인이 비명을 내지르는 장소가 아니라 비명을 표현하는 하나의 냉엄한 작품 공간이라고 네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말하였다)

 

<잘 읽은 사과> 김혜순. 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기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 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감상: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일상의 여러 풍경들과 마주한다. 가을 찬바람이 '나락' 빻아지는 것처럼 자전거와 부딪치며 소리를 내고, 변함없는 아기 구름은 옛 추억의 그 사람처럼 살며시 손등을 덮어 준다. 힘들 때마다 찾아온 고향이 둥글게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무리 큰 사과라도 둥글게 깎으면 소리 없이 잘 깎인다. 할머니는 아무리 노망 들었다지만 경험으로 노련하게 큰 사과를 잘 먹고 있다.

 인물의 등장이 처녀 엄마, 아가, 할머니로 이어진다. 4연까지는 '소리'의 심상으로 청각을, 5연~ 8연은 촉각, 9연~10연은 후각, 11연~ 마지막은 시각적 묘사로 연결되는 치밀함이 돋보인다.)

 

마치며: 가족이란 너무나 슬픈 작별의 공동체

시인은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겪어보니 가족이란 너무 슬픈 작별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엄마의 아픔과 죽음이 시인에겐 큰 슬픔이고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시인들의 시는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존재이며, 타인을 위로하는 것은 수필이나 산문의 영역이라고 본다고 말하였다.

 

'나의 글쓰기는 안과 밖, 상위와 하위의 동시적 언술이다. 나는 하나의 주체에서 또 다른 주체로 끊임없이 흘러 다닌다. 나는 처녀이고, 어머니이다. 아기이고 할머니다. 나의 귀는 세상의 조개만큼 많고 많지만, '지금, 여기'의 어느 순간에 응축되어 떨고 있다. 나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내 존재는, 늘 증식 중이다.'

(김혜순, '어머니와 처녀라는 허구')

 

시인은 제도화된 지배적 언어에 맞서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발전하여 '시인들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문헌: 김혜순, 어머니와 처녀라는 허구/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나무위키/구글)

 

김혜순 1 : (여성의 몸) 되돌아오는 말/ 수화합창/ (엄마 되기) 딸을 낳던 날의 기억/ 엄마

김혜순 2 :  (알레고리) 죽은 줄도 모르고/ (나이면서 타자)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잘 익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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