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형식의 파괴, 해체 시인 "황지우"(4)

e길 2023. 7. 7. 00:45
반응형

형식의 파괴, 해체 시인 "황지우" 작가는 1980년대 군부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작가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의 작품에는 당시의 일상과 정치, 종교, 사회가 숨 쉬고 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작가는 시는 말하는 것(텍스트. 글자)과, 말하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할(콘텍스트. 상황적 의미)것이 있으며, 이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방법으로 상황, 맥락을 독자들이 알 수 있게 한다'라고 말한다. '쓴 의도'와 '읽은 의미'는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의미가 있다(상호 주관성). 이는 '공동사회성(gemeinschaftlichkeit)'이 그들의 언어, 대화, 이해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황지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시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감상: 해가 지기 직전의 검푸른 바다는 시뻘건 저녁노을과 어우러져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 인간의 젊음이 정점에 이르면 늙을 일만 남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내려갈 일만 남은 것처럼, 빛나는 바다 역시 최고로 빛나고 난 후 저무는 것이다.

 외다리로 서서 멍하니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늙은 물새. 나도 저렇게 빛나던 때가 있었는데 생각하며 졸린 노안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1998.)

 

<연혁> 황지우. 시(부분)

 

섣달 스무 아흐레 어머니는 시루떡을 던져 앞바다의 흩어진 물결들을 달래었습니다. (... 중략).

어머니는 저를 붙들었고 내지에는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럴수록 근시의 겨울 바다는 눈부신 저의 눈시울에서 여위어 갔습니다. 아버님이 끌려가신 날도 나루터 물결이 저렇듯 잠잠했습니다. 물가에 서면 가끔 지친 물새 떼가 저의 어지러운 무릎까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느 외딴 물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흰 상여 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꽃 속이 너무나 환하여 저는 빨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감상: 이 작품은 '아버지 상실'의 비극적 상징에서 출발한다. 상실은 자아의 결핍이며, 타자와 소통할 수 없는 '닫힌 속성'을 의미한다. 시는 아버지가 떠난 해남 '솔섬'의 바닷가를 회상하며, 자아 상실의 비극을 시화하고 있다.

어머니는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 의식으로 '시루떡'을 바다에 던진다. 어머니의 한은 연기로 피어올랐고, 화자는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물, 흰 상여 꽃, 잠 등은 모두 죽음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1983년/ 말뚝이/ 발설'> 황지우. 시

워어메 요거시 머시다냐

요거시 머시여

머냔 마리여

사람미치고 화안장 하것네

머가 어쩌고 어째야

옴메 미쳐 불것다 내가 미처부러

아니

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그것이라니

이런

세상에 호랭이가 그냥

무러가 불 놈 가트니라고

너는 에비 에미도 없냐

넌 새끼도 없어

요런

호로자식을

그냥 갓다가 

그냥

워매 내 가시미야

오늘날 가튼 대멩천지에

요거시 머시다냐

머시여

아니

저거시 저거시고

저거슨 저거시고

저거시야말로 저거시라니

옛끼 순

어떠케 됫깜시 가미 그런 마를 니가 할 수 잇다냐

그 마리 니 입구녁에서 어떠케 나올 수 잇스까

낫짝 한번 철판이구나

철판이여

그래도 거시기 머냐

우리는 

거시기가 거시기해도 거시기 하로 미더부럿게

그런디이

머시냐

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기 히어 부럿는디

그러믄

조타

조아

머시기는 그러타치고

요거슬 어째야 쓰것냐

어째야 쓰것서어

요오거어스으을

 

(감상: '말뚝이'라는 '광대'를 화자로 하여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어조는 조롱적이고 시형식은 파격적이다. 1983년 우리 사회는 '발설하기 힘든 닫힌 사회'이어서 화자는 기지와 비판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대의 우울한 시선으로 날카롭게 풍자하며, 절망으로부터 출발하는 풍자 정신은 시대에 대응하는 우회적인 현실 능력이다.

 

'거시기'란?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는 말이며, 옛날 전라도에서 많이 쓰인 말이다. '거시기'란 말은 자연과 동심을 닮은 듯, 겉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그 뜻을 알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구수한 말이다.)

 

<삶> 황지우. 시

 

비 온 뒤

또랑가 고은 이토 우에

지렁이 한 마리 지나간 자취

 

5호 당필같다

 

일생일대의 일획

 

획이 끝난 자리에

지렁이는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감상: 지렁이 '일생'에 한 획을 그어 놨지만, 그 지렁이는 사라지고 없다. 나름의 '자취'를 남겨 두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없어도, 이룬 업적은 영생불멸하리라.)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황지우. 시(부분)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똥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똥개의 눈이 하두 맑고 슬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놈을 눈깔이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 그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눈깔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리나라 봄 하늘 같이 보드랍고 묽은, 똥개의 그 천진난만 ㅡ

천진무후한 각막 ㅡ 수정체 ㅡ 망막 속에, 노란 봉투 하나 들고 서있는, LONDON FOG표 폴리에스테르 100% 바바리 차림의, 나의 전신이 나의 전모가, 나의 전생애가 들어가 있다. (.......)

그 똥개, 쓰레기통 뒤지러 가고 나, 버스 타러 핑가고, 전봇대에 전 씨 상가, 시온 장의사, 전화 999-1984.

 

(감상: 똥개 한 마리와 마주친 상황을 시화했다. 억압의 구조에 대응하는 화자의 논리는 치밀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되고 있다. 똥개의 눈이 슬퍼서 쳐다보니, 그놈도 초라한 '나'를 슬픈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초라한 화자를 안타까워 슬프게 쳐다보는 것이다.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고도의 풍자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우연히 눈이 딱 마주쳐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화자와 개, 개의 눈 속 각막과 수정체와 망막에는 노란 봉투에 바바리를 입은 자신이 들어가 있다. 화자와 개는 서로의 생애를 서로의 눈 속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 언젠가, 어디선가 꼭 한 번 만났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뿐 각자 서로의 길을 간다.)

 

<서벌, 셔발, 셔발, 서울, SEOUL> 황지우. 시(부분)

 

장만섭 씨(34세, 보성물산주식회사 종로 지점 근무)는 1983년 2월 24일 18:52 # 26, 7, 8, 9....... 화신 앞 17번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귀에 꽂은 산요 리시버는 엠비시에프엠 '빌보드 톱텐'이 잠시 쉬고, ' 중간에 전해드리는 말씀, ' 시엠을 그의 귀에 퍼붓기 시작한다. 

 쪼옥 빠라서 씨버 주세요. 해태 봉봉 오렌지 쥬스 삼배권!

더욱 커졌씁니다. 롯데 아이스콘 배권임다!

뜨거운 가슴 타는 갈증 마시자 코카콜라!

오 머신는 남자 캐주얼슈즈 만나 줄까 빼빼로 에스에스 패션!

 

그가 그녀의 배 위에서, '그년'과 놀아난 '표'를 지우려 하면 할수록, 보성물산주식회사 차장 장만섭 씨는 영동의 룸쌀롱 '겨울바다'(제목이 참 고상하지, 시적이야 그지?)의 미스 쵠가 하는 '그년'을 더욱더 실감으로 만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고 저쩌고 해서 오늘 장만섭 씨는 미스 쵠가 챈가 하는 여자를 낮에 만났고, 대낮에 여관으로 갔다.(중략)

 

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

띠리릭 띠리릭 띠리리리리리리릭

피웅피웅 피웅피웅 피웅피웅피웅피웅

꽝! ㄲ ㅗ ㅏ ㅇ !

PLEASE DEPOSIT COIN

AND TRY THIS GAME!

또르르르륵

그리고 또 다른 동전들과 바뀌어지는 

숑숑과 피웅피웅과 꽝!

그리고 숑숑과  피웅피웅과 꽝! 을 바꾸어주는, 자물쇠 채워진 동전통의 주입구에서

 그러나 정말로 갤러그 우주선들이 튀어나와, 보성물산주식회사 장만섭 차장이 서 있는 버스 정류장을 가총 소사 하고, 그 옆의 신문대를 폭파하고, 불쌍한 아줌마 꽥 쓰러지고, 그 뒤의 고구마튀김 청년은 끓는 기름 속에 머리를 처박고 피 흘리고, 종로 2가 지하철 입구의 전경 버스도 폭삭, 안국동 화방 유리창은 와장창, 방사능 이 지하 다방 '88 올림픽'의 계단으로 흘러 내려가고, 화신 일대가 정전되고, 화염에 휩싸인 채 사람들은 아비규환, 혼비백산, 조계사 쪽으로, 종로예식장 쪽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쪽으로, 우미관 뒷골목으로, 보신각 쪽으로.

 

(감상: 첫 번째는, 현대인의 문란한 성풍속을 풍자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샐러리맨 화자'를 통하여 성윤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화자는 객관적 관찰자의 눈으로, 현대인의 파괴된 실상을 풍자하고 일상 상징을 낯설게 표현한다. 

 

두 번째는, 장만섭 씨는 '산요 리시바'를 꽂고 퇴근을 한다. 시엠송과 광고를 들으면서 퇴근을 한다. 

 

세 번째는, 거리에서 오락하는 모습을 화자가 보고 있다. 갤러그 오락에서는 외국어도 일상화되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화자는 상상을 하게 된다. 갤러그 우주선들이 튀어나와 '버스정류장'에 총을 쏘고, 여러 주위 상가를 무참하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런 공포감과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며: '상징적 풍자' 시인

황지우 시인의 미덕은 '아버지 상실'과 그 욕망의 시대를 넘어서는 자리에 존재하는 '상징적 풍자'에 있다. 이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작품들은 대체로 회화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들이, 현실을 아파하는 시인의 심정을 두루 담고 있다. 시인은 90년대 들어 근 10년 가까운 침묵을 지켰는데,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너무도 쉽게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침묵만이 미덕이라 생각하며 술을 엄청 가까이했다고 한다.  

 그러다 시인은 1998년, 한 편씩 써두었던 시를 모아,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발표하면서 서점가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자 그는 다시 시인으로 세상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미래사 1991)/ 나무위키/ 위키백과/ 구글) 

 

(1) 편: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파란만장/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그대의 표정 앞에/ 등

(2) 편: 심인/ 벽 1/ 초로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 추모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 등

(3) 편: 버라이어티 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무등/ 등

(4) 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연혁/ 1983, 말뚝이, 발설/ 삶/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서벌, 셔발, 셔발, 서울, SEOUL/ 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