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여성의 언어' 시인 김혜순 (1)

e길 2023. 7. 11. 00:01
반응형

'여성의 언어' 시인 김혜순 작가는 국문학 박사이며 교수, 1980년대 시인으로서, '여성의 언어'는 남성 중심으로 만든 '이데올로기'로 여성이 말을 하면 안 되는 사회, 여성의 언어는 본래적으로 '위반의 언어'라는 속성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남성에 의해 왜곡된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한다. 시인은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시인은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시인은 '식민지에서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여성의 몸

'여성들은 항상 환경이나 자연처럼 음모의 정치학에 의해 표현되어 왔다. 여성의 몸은 차이가 새겨짐으로써 의미를 갖는 몸이 되고 말았다. 남성의 몸은 중심에서 점점 비대해지고, 여성의 몸은 주변으로 밀린 몸, 중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몸이 되고 말았다. 여성의 몸은 물리적 영역, 자연과 동일시되어 왔고, 남성은 인간적인 정신과 관계되어 왔다. 그래서 정신이 물질을 억압하고 소유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졌다.'

(김혜순, '여성의 몸,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되돌아오는 말> 김혜순. 시(부분)

 

말을 한다. 

말을 해서 변기통에 몰래 버리고 

비뚤어진 입은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다시 참지 못해 입을 비틀고

말을 한다.

그러면 너는 내 말을 건져서

ㅡ 님금임 는귀 귀다낭 귀 

내 입 속에 다시 처넣고

내 입술을 비틀어 닫는다.

 

(감상: '말을 한다'  (여성이), '말을 해서 변기통에 몰래 버리고' (상대방에 전달치 못하고 버려야 할 말)

'비뚤어진 입은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여성의 말은 비뚤어진 잘못된 말) 'ㅡ 님금임 는귀 귀다낭 귀'는 (말할 수 없는 말, 하고 싶은 말, 여성의 말), '내 입 속에 다시 처넣고 내 입술을 비틀어 닫는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입다물어야 하는 사회,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왜곡하는 것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수화합창> 김혜순. 시(부분)

 

숨 죽여 덩덩 울리는 땅덩어리

마치 큰북 위에 몰려 서 있는 듯.

저절로 두 발이 들려지고

두 팔이 펼쳐지게 하는

은밀한 피부 진동.

소리쳐 불러 볼 입술도 없건만

큰 소리 들어줄 귀마저 닫혀 있건만

온몸을 밀고 들어와 온몸을 흔드는

울리는 간절한 리듬, 황홀한 반주.

 

온몸에 음악을 품고

우우, 그 가락을 감추지 못해,

코를 찡긋거리며,

열 손가락을 펼치고 오므리고

간혹 곤두박질치는 구멍 뚫린 우리의 합창.

 

해지는 어스름마다 서녘에 몰려 서서

불러도 들리지 않는 캄캄한 노래

우리는 부르지

검푸른 울음이 올올이 풀어져

우리의 몸짓 노래를 삼켜버릴 때까지

우리는 노래를 참지 못해

온몸에 살을 털어내며, 무서워 벌벌

떨며, 가슴을 꽝꽝 치며, 소리 지르지.

지르지. 삼키지. 부르지. 먹지.

숨 죽여 덩덩덩 솟아오르는 땅덩어리

뒤돌아서서 달아나도 다시 솟아오르는

안으로만 소리쳐 불러 넣는 우리의

몸짓 노래. 가슴이 꽝꽝 터지도록

안으로만, 안으로만 쑤셔 넣는 벙어리 합창.

 

(감상: 여성의 말 못 할 언어를 '언어 장애인'에 비유했다. 말을 하고 싶지만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말'은 억눌러져 말을 못 한다. '수화합창'은 몸짓 언어다. 억눌림의 손짓, 몸짓 언어는 여성의 언어다. 말을 하고 싶지만, 두 발을, 두 팔을 이용한 안타까운 몸짓만이 여성의 언어인 것이다. '온몸을 밀고 들어와 온몸을 흔드는, 울리는 간절한 리듬, 황홀한 반주'는 말하기 위한 황홀함이 감춰져 있다.

 '우리는 노래를 참지 못해

온몸에 살을 털어내며, 무서워 벌벌

떨며, 가슴을 꽝꽝 치며, 소리 지르지.

지르지. 삼키지. 부르지. 먹지.'는

남성적인 시선으로는 병적으로 보지만,

여성의 시선으로는 '몸짓언어', '노래', '벙어리 합창'으로 본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면서, 스스로 움직여 멀어져 가는 것이 물이다. 물은 마치 어머니처럼 흘러들지만 곧 스스로는 그 생명으로부터 더 낮은 곳으로 떠난다. 물은 사라짐으로써 뭇 생명에게 생명을 준다. 물은 어머니처럼 자식에게 생명인 물을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다. 물은 모든 생명 안에서 어머니의 존재방식 그대로 존재한다. (김혜순, '물',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딸을 낳던 날의 기억 ㅡ판소리 사설조로> 김혜순. 시(부분)

 

청천벽력.

정전. 암흑천지.

순간 모든 거울들 내 앞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며

깨어지며 한 어머니를 토해내니

흰 옷 입은 사람 여럿이 장갑 낀 손으로

거울 조각들을 치우며 피 묻고 눈 감은

모든 내 어머니들의 어머니

조그만 어머니를 들어 올리며

말하길 손가락이 열 개 달린 공주요!

 

(감상: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모습을 시화했다. 청천벽력이고 어두컴컴한 암흑만이 있을 뿐, 그 고통을 참으며 순간에 거울이 깨지는 것 같은 충격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손가락이 다섯 개씩 정상인 공주라며 간호사가 말해준다.)

'나의 아이는 나의 어머니들의 아이면서, 동시에 나이면서, 나의 어머니들이다. 아이는 나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내가 낳은 나이다. 아이는 태어남으로써 나를 타자의 자리에 갖다 놓는다. 나는 출산을 통하여 어머니 되기와 아이 되기를 동시에 달성한다. 나는 출산을 통해 '몸'이 된다. 몸 됨으로 나를 벗어나 타자가 된다. 또한 '내'가 된다. 이것이 내가 내 시들에서 무수한 타자들과 맺는 나의 관계 맺기 방식이다.'

(김혜순, 어머니와 처녀라는 허구',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엄마> 김혜순. 시(부분)

 

벽을 세우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시야를 좁게 가져라

저 까만 우물을 향해 투신해라

영혼을 아무 데나 흘리고 다녀선 안 된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자식의 시야에 칸을 지르고

널 푸른 영혼에 금을 긋고

우물을 파는 

자못 교훈적인 엄마가 되었다

 

(감상: 유교 중심사회에서는 '남성중심 사회'의 룰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덧 자식에게 교훈을 주는 엄마가 되었다. 벽을 세워 시야를 좁게 가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친다. '칸'을 지르고, '금'을 긋고는 '막아서 보지 못하게, 선을 넘어가지 마라'는 교훈이다.)

 

마치며: 여성의 몸

김혜순 작가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데스크'한 상상력으로 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 있다.

 

김혜순 작가의 작품은 언어적 실험을 통해 독특한 시적 이미지 형상을 창조하면서 여성의 존재 방식과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여성적 글쓰기의 시적 실천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세계의 부조리와 죽음의 운명에 저항하는 시적 방법으로 격렬한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며, 현실의 부정성을 드러내는 시적어조가 언어 표현의 탄력성과 경쾌함을 살리고 있다.

 

(참고문헌: 김혜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여성의 몸/ 위키백과/ 구글)

 

김혜순 1 : (여성의 몸) 되돌아오는 말/ 수화합창/ (엄마 되기) 딸을 낳던 날의 기억/ 엄마

김혜순 2 :  (알레고리) 죽은 줄도 모르고/ (나이면서 타자)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잘 익은 사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