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형식의 파괴, 해체 시인 "황지우"(3)

e길 2023. 7. 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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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파괴, 해체 시인 '황지우' 작가는 1980년대 독재정권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기 위해 형식을 파괴하고 억압을 콘텍스트에 집어넣었다. 80년대의 민중시가 거의 잊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황지우' 작가의 시는 여전히 독자에게 호소력을 주고 있다.

 

시인은 일상의 억압된 침묵을 읽는 '징후 독법(시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추임새로 가능성을 독자들이 상상하게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은폐된 억압구조를 폭로하고 무반성적인 일상적 삶에 충격을 주어 정치적, 시적 자각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수록된 시집

<버라이어티 쇼> 황지우. 시 (부분)

 

저 새끼가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야 이 새끼야 눈깔을 엇다 뜨고 다녀?

뭐 새끼야? 이 새끼가 엇다 대고 새끼야 새끼야 나발 까는 거야?

좌회전 차선에서 영업용 택시 운전수와 자가용 운전자가 손가락을 하늘로 찔러대면서 악쓴다.

 

하늘 높이, 아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교회 첨탑이 솟아 있다. 빨간 네온싸인 십자가가 빨간 네온싸인의 '영동 캬바레' 위에 켜져 있다. 무슨 통신사 안테나 같은 게...... (중략)

 

노래야 나오너라 궁자작 짝짝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 궁자작 짝짝

엽저 언 여얼 다앗냐앙 (중략)

 

오늘 아침 버스를 타는데, 뒤에서 두 번째 오른쪽 좌석에 누군가 한 상 길게 게워낸 자국이 질펀하게 깔려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서로 먼저 앉으려다 소스라치면서 달아났다. 거기에는 밥알 55%, 김치 찌꺼기 15%, 콩나물 대가리 10%, 두부 알갱이 7%, 달걀 후라이 노른자위 흰자위 5%, 고춧가루 5%, 기타 3% 순으로.

'천지신명이시여, 이게 우리의 지상의 양식 이랍니다. 퍼부어주세요. 퍼 먹여주세요, '

 

슈퍼마케트 양쪽 벽이 다 거울이다. 한쪽 거울이 다른 쪽 거울을 감시하고 다른 쪽 거울은 감시하는 한쪽 거울을 감시하고 한쪽 거울은 또또 그것을 감시하고 또또또 감시하고...... (중략)

 

(감상: 시대의 생활상을 짤막하게 '콜라주'한 시다. 시의 형식을 파괴하고 보이는, 또는 느낌을,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오늘 아침 버스'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분석적이고, 치밀하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에게 무관심을 관심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감상: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처럼 간절한 일은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약속한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촉각을 세운적이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기다리게 하고 그 기다림에 익숙해지면서 때로는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가슴이 애릴 정도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풍자'하고 있을까? 

 '오지않는 너'이지만  화자는 오히려 '너'에 대한 기다림을, 설레는 기다림과 행복하고 충만한 심정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남의 시간이 될 미래와, 기다림의 시간인 현재에 대하여 축복하며 마음은 벌써 너에게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무등> 황지우. 시

 

                                                                                   

                                                                               절망의산

                                                                          대가리를 밀어버

                                                                       린,민둥산,벌거숭이산

                                                                   분노의산,사랑의산,침묵의

                                                               산,함성의산,증인의산,죽음의산

                                                           부활의산,영생하는산,생의산,회생의

                                                          산,숨가쁜산,치밀어오르는산,갈망하는

                                                      산,꿈꾸는산,꿈의산,그러나현실의산,피의산,

                                                피투성이산,종교적인산,아아너무나너무나폭발적인

                                                산,힘든산,힘센산,일어나는산,눈뜬산,눈뜨는산,새벽

                                              의산,희망의산,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평등한

                                                                                     산,대

                                               지의산,우리를감싸주는산,격하게,넉넉하게,우리를감

                                                                              싸주는어머니

 

(감상; '무등산'은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으로 출발하여,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을 거쳐, 5.18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불의와 외세 그리고 반민주 세력에 대한 저항운동의 상징인 산이다. 황지우 시인의 '무등'은 바로 이런 '무등산'을 노래한 것이며, 시어의 특이한 배열을 통해 '무등'과 '산'을 이미지화했다. 시인은 시의 제목'무등'을 '산'이라 제시하며 띄어쓰기까지 무시한 점층적인 시어의 배열을 통해 이를 산 모양의 삼각뿔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절망의 산'에서 출발하여, '산'의 계속되는 반복을 통해 무등산이 어떠한 산이었고, 현재 어떠한 산이며, 미래에 어떤 산이 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절망의 산 '민둥산'은 이제 민중의 역사적인 힘과 희망이 가득 담긴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내다보며 끝을 맺는다.

 

이제 무등산은 '새벽의 산'이요 '희망의 산'이며 평등의 산이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를 감싸주는 산,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 감싸주는 '어머니'같은 산이 될 것이다.)

 

마치며: 유토피아를 꿈꾼 시인

황지우 작가는 형태 파괴적 작업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와 강렬한 부정의 정신으로 시대의 암울과 슬픔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시인이다. 골목 벽보, 시사만화, 상업광고, 속칭 '빨간책'의 한 대목 등 서울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작품에 원색적으로 삽입한다. 그런 시인에게 평론가들은 시의 형태 파괴, 또는 '해체 시'의 작가라고 칭송했다.

(참고문헌: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미래사 1991)/ 나무위키/ 위키백과/ 구글) 

 

(1) 편: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파란만장/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그대의 표정 앞에/ 등

(2) 편: 심인/ 벽 1/ 초로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 추모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 등

(3) 편: 버라이어티 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무등/ 등

(4) 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연혁/ 1983, 말뚝이, 발설/ 삶/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서벌, 셔발, 셔발, 서울, SEOUL/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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