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가 "김기림"의 문학 세계, 그리고 '이상' (1)

e길 2023. 6. 2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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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기림은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김인손이 본명이며, 김기림은 필명이다. 한국문학계에 '모더니즘' 이론을 전파하고 실천한 김기림 작가는, 내용 편향적인 카프문학으로 대변되는 '계급문학'과, 백조파로 대변되는 '감상적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정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적 감성을 담은 과학적인 시와 근대적 사물을 다루면서 도시적 감각과 정서를 주장했다. 또한 '이상' 작가와의 친분 관계를 담아 본다.

 

방법론적으로는 종래의 리듬 중심의 노래하는 시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의미를 담은, 차가운 이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와, 회화성을 강조하는 이미지즘의 시를 주장하였다.

김기림 시집

  

<길> 김기림. 시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낡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 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감상: 현재의 시점에서 화자인 '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길 위에서 떠나보낸 소중한 대상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길'은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낸 곳이자 기다리는 곳으로, 어머니, 첫사랑, 상실감에 대한 그리움을 언덕길, 강가, 낡은 버드나무로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길'은 인생의 여정을 상징하며, 화자의 인생이 녹아있고 그 길 위에 서있는 화자의 인생이 보인다. 어릴 적 기억 속의 고향은 아름답지만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낸 화자의 기억은 외롭고 쓸쓸하다.)

<오후의 꿈은 날줄을 모른다> 김기림. 시

날아갈 줄을 모르는 나의 날개.

 

나의 꿈은

오후의 피곤한 그늘에서

고양이처럼 조려웁다.

 

도무지 아름답지 못한 오후는

구겨서 휴지통에나 집어넣을까?

 

그래도 지문학의 선생님은 오늘도

지구는 원만하다고 가르쳤다나.

'갈릴레오'의 거짓말쟁이.

 

흥 창조자를 교수대에 보내라. 

 

하누님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성한 날개를 다고. 나는 화성에 걸터앉아서

나의 살림의 깨어진 지상을 껄껄껄 웃어주고 싶다.

 

하누님은 뭔 그런 재주를 부릴 수 있을까?

 

(감상: '가자 가자 날아보자. 날개'의 이상 작가 보다 두 살 위인 김기림 작가는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 동료 문인인 '이상' 작가의 작품활동을 도왔다. 이상은 자신의 지지자이자 멘토인 김기림 작가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으며, 두 작가는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두 작가는 '날개'를 통해 날고자 하는 공통된 꿈을 가졌는지 모른다. 제대로 된 '성한 날개'를 가지고 '화성에 걸터앉아 껄껄껄 웃을 수 있는' 여유와 상상력이 돋보인다. 세상은 둥글둥글 원만하다고 배웠지만 '오전' 전반전의 삶도 힘들었는데, '오후'의 삶도 아름답지 못하다며 '조물주'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바다와 나비> 김기림. 시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길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감상: 아무도 수심을 알려주지 않아 '냉혹한 현실'인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다가, 소금물에 절여져서 '짜디짠' 세상에 부딪혀 지쳐 돌아온 나비, 가만히 있는 듯 조용한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혹한 현실을 표현한다. 힌 나비의 '흰색'으로  나비의 가냘픔을, 꽃이 피지 않은 검푸른 바다와 새파란 초승달의 거대한 '푸른색'으로 냉혹한 세계를, 객관적이고 간결한 어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발표한 시이다. 흰나비가 바다를 보고 '젖과 꿀'이 있는 청무우밭인 줄 알았더니, 무서운 바다여서 절망하며 지쳐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마치며: 시대정신

김기림 작가의 문학적 활동은 창작과 평론으로 크게 구별된다. 과거의 시들이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허무주의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명랑한 '오전의 시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인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불안사조의 유행과 근대화의 허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주었다. 또한 '시각적 이미지, 회화성'만을 추구하는 시는 또 하나의 순수주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상' 작가는 새 작품을 쓰면 '김기림' 작가에게 먼저 보내 평을 들었다. 일찍이 '이상' 작가의 천재성을 김기림 작가는 알아보았고, 병약한 이상을 많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두 작가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김기림 작가의 일본 '동북제대' 유학시절에 일본에서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상' 작가의 사후에 김기림 작가는 '애도의 글' 형식인 '고 이상의 추억'이란 수필을 쓰기도 하였다.

(김기림 작가의 수필 '고 이상의 추억'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조광/ 나무위키/ 이상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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