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태 시인 '정현종' 작가는 1970년대 시인으로 참신한 언어와 사유적인 어법으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추구해 온 시인이다. 그가 탐구한 사물의 현상 본질은 우리나라 현대시사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으며, 사물의 본질을 생명에 두고 사물의 생명을 포착하는 이미지에 주력한 작가이다.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지만 두살 때 경기도 고양군 화전리로 이사한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 할 수 있었고,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를 추구 했지만 '모더니즘' 시인으로 분류된다. 6,25 한국전쟁 체험으로 인간의 추악함과 죽은 시체를 보며 인간 육체의 유한성을 느껴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시란 무엇인가
'우리는 시를 숨 쉽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 안되거나 살기가 어려울 때 답답하거나 숨 막힌다고 말합니다. 또 곤경에 처하거나 급박한 상황 또는 어떤 일의 와중에서 잠시 벗어날 때 우리는 한숨 돌린다, 숨통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심리적 억압이나 육체적 긴장 또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지요.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이지요. 시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해방이나 열림의 순간을 체험케 합니다.'
(정현종, '시란 무엇인가', '정현종 깊이읽기')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부임하던 1982년 '숨과 꿈'을 발표하면서, 숲이 산소의 원천이듯이, 시의 '숨' 원천은 '꿈'이라고 설파한다.
<생채기> 정현종. 시
숲에 가서 나무 가시에 긁혔다. 돌아와서 그걸 들여다본다. 순간, 순연하게 신선하다.
(숲 냄새, 초록 공기의 폭발, 깊은 나무들, 싱글거리는 흙, 메아리와도 같은 하늘......)
우리가 살다가, 어떻든, 무슨 생채기는 날 일이다. 팔이든 다리이든 가슴이든 생채기가 난 데로 열리는 서늘한 팽창......지평선의 숨결, 둥글게 피어나는 땅, 초록 세계관, 생바람결......
생채기는 말한다
네 속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다 관습이여
네 속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다 잔인의 굴레여
피가 흐르고 있다 모든 다람쥐 쳇바퀴여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우리의 생채기이니
그건 실로 우주적 풀무가 아니겠는냐
(감상: 살아 가면서 삶의 상처를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관습이나 습관처럼 굳어버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우리들의 삶에 조금씩의 상처는 있는 것이니, 그건 우주적인 현상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받아들여 순응하자. 생채기는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육체가 열리는 문이다. 생채기로 모든 사물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채기는 우주를 만날 수 있는 '풀무'가 되는 것이다.)
<섬> 정현종. 시 (전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감상: 인간과 인간 사이 벌어진 사이를 '섬'이라 표현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고독과 외로움, 사회적 소외감을 의미한다. 외롭지만 그 섬에 가고싶다는 것은, 그 고독과 외로움과 소외감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던져주는 메시지이다.)
<방문객> 정현종. 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감상: 나와 인연을 맺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고, 그들에게도 나 못지 않은 슬픔과 아픔,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올 때는 그 상처들을 모두 짊어지고 오는 것이며, 앞으로 어떤일이 생길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의 일생을 대면하는 일이라 정성을 다해야 한다. 기대는 낮추고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해야 한다. 살아온 일생 속에서 수없이 부서졌을 마음을 안아주자. 그 마음을 감싸고 더듬어주는 편안한 바람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해하고 보살피며 미래를 함께 나아가자.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머어마한 일이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시 (광주항쟁에 대한 죄책감을 담아 낸 시집)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이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감상: '떨어져도 튀는 공'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온다. '탄력의 나라'는 쓰러지는 법이 없이 제자리로 가려는 힘을 말하며, 즉 생명이란 가만히 있어도 솟구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은 둥글며 속으로는 탄력을 가지고 있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탄력적인 삶의 생기와 온갖 고통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비상이 내재되어 있다. 공의 탄력성을 통해 수동적이고 억압적인 삶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탄력적인 자유로운 생명력을 지향한다.)
'중력이라는 것이 우리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힘입니다만, 중력에 거스르며 솟으려고 하는 의지가 바로 공기와 같은 의지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문학이나 예술 이를테면 무용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육체가 참 무거운 것인데 그것을 춤으로 가볍게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춤은 육체의 공기화이니까요. 가벼움이 탄력적인 것이니까요.'
(정현종 대담: '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정현종 깊이읽기')
<갈증이며 샘물인> 정현종. 시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감상: '샘물이며 갈증'이라는 모순 어법을 통한 풍부한 의미의 상호작용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샘솟는 것은 극심한 갈증이 있기 때문에 더 간절하다. 갈증이 없다면 목마름도 없어, 내 속에서의 샘솟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갈증이 기쁨이고, 샘솟음이 곧 고통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갈증과 샘물'이라는 양 극단으로 자연과 생명의 교감과 경이로움을 표현했다.)
마치며: 생태시인
시를 생각으로 '의미 생산' 하는 일은 적절하지 못하고 시는 우리에게 이미 와있다며, 시에서 생동하는 기운이 없고 굳어있는 상투어만 나온다면 그 이유는 '반복되는 삶에서 감각과 에너지, 감정이 마비되고, 상투적인 의식이 내면으로 들어가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정현종 시인은 사물과 소통하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주장한다. 자연을 예찬하는 우리나라 '생태시인' 중의 한 명인 시인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 해야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나는 별아저씨'/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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