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가 "김기림"의 문학 세계, 그리고 '이상' (2)

e길 2023. 6. 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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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기림의 첫 시집 '기상도'가 1936년 7월에 나왔을 때, 동북제대에 유학 중인 김기림 작가의 부탁으로 이상 작가가 본문 편집과 표지 장정을 떠맡을 정도로 두 작가는 가까웠다. 그 해에 김기림은 파리에 가서 '슈르 리얼리스트와 경쟁하며 3년간 공부하고 오자'라고 제안했지만, 이상의 현실적 상황 때문에 파리 유학을 가지 못한다. 그 무렵 이상은 거듭되는 카페 경영의 실패와 '금홍'과의 이별, 나태와 방종, 질병 등으로 심신이 퇴락하고 있었다. 

 

김기림 수필 모음

<추억> 김기림 시.

 

종다리 뜨는 아침 언덕 위에 구름을 쫓아 달리던

너와 나는 그날 꿈 많은 소년이었다.

제비 같은 이야기는 바다 건너로만 날리었고

가벼운 날개 밑에 머ㅡㄹ리 수평선이 층계처럼 낮더라.

 

자주 투기는 팔매는 바다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고

지칠 줄 모르는 마음은 단애의 허리에

게으른 갈매기 울음소리를 비웃었다.

 

오늘 얼음처럼 싸늘한 노을이 뜨는 바다의 언덕을 오르는

두 놈의 봉해진 입술에는 바다 건너 이야기가 없고

 

곰팡이처럼 얼룩진 수염이 코밑에 미운 너와 나는

또다시 가슴이 둥근 소년일 수 없구나.

 

(감상: 파리유학을 가지 못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시가 아닐까 추측해 보며, 꿈으로 가득했던 지난 상황의 그리움을 회상하며 탄식하는 작품이다. 종다리 뜨는 아침, 갈매기 우는  낮을 지나, 싸늘한 노을의 늦은 오후를 지나니 어느새 수염이 얼룩진 나이 먹은 밤이 되어, 그때의 가슴이 둥근 꿈 많은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된다.)

 

이상은 그해(1936년) 10월 동경으로 떠나면서, 일본 유학 중인 김기림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다.

 

'골맹에 든 이 문학병을 ㅡ 이 익애의 도취의(빠져)... 이 굴레를 제발 좀 벗고 제법 근량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소. 여기서(경성) 같은 환경에서는 자기 부패 작용을 일으켜서 그대로 연화할 것 같소. 동경이라는 곳에 오직 나를 매질한 빈고가 있을 뿐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컨디션이 필요하단 말이오.' (부분)

<고 이상의 추억>: 애도의 글 방식의 '김기림의 수필' 부분

'상'은 필시 죽음에게 진 것은 아니리라. 상은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까지도 손수 길러서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과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이 없다. 상의 시에는 언제든지 상의 피가 임리하다(넘쳐흐른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 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다방 N 등의자에 기대앉아 흐릿한 담배 연기 저편에 반나마 취해서 몽롱한 상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 비극을 느끼고 소름 쳤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켜 있었다. 파리에서 문화 옹호를 위한 작가 대회가 있었을 때 내가 만난 작가나 시인 가운데서 가장 흥분한 것도 상이었다. 

 

상이 우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는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한 정령이었다. 악마더러 울 줄을 모른다고 해서 비웃지 마라. 그는 울다 울다 못해서 이제는 누선이 말라 버려서 더 울지 못하는 것이다. 상이 소속한 이십 세기의 악마의 종족들은 그러므로 번영하는 위선의 문명을 향해서 메마른 찬웃음을 토할 뿐이다.  

 

흐르고 어지럽고 게으른 시단의 낡은 풍류에 극도의 증오를 품고 파괴와 부정에서 시작한 그의 시는 드디어 시대의 깊은 상처에 부딪혀서 참담한 신음 소리를 토했다. 그도 또한 세기의 암야 속에서 불타다가 꺼지고 만 한 줄기 첨예한 양심이었다. 그는 그러한 불안, 동요 속에서 '동하는 정신 (움직이는 정신)'을 재건하려고 해서 새 출발을 계획한 것이다. 이 방대한 설계의 어구에서 그는 그만 불행히 자빠졌다.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 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시단과 또 내 우정의 열석 가운데 채어질 수 없는 영구한 공석을 하나 만들어 놓고 상은 사라졌다. 상을 잃고 나는 오늘 시단이 갑자기 반세기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 내 공허를 표현하기에는 슬픔을 그린 자전 속의 모든 형용사가 모두 다 오히려 사치하다. ' 고 이상'. 내 희망과 기대 위에 부정의 낙인을 사정없이 찍어 놓은, 세 억울한 상형문자야.

 

반년만에 상을 만난 지난 삼월 스무날 밤 동경 거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그리로 왔다는 상의 편지를 받고 나는 지난겨울부터 몇 번인가  만나기를 기약했으나 종내 센다이(김기림이 다니는 동북제대)를 떠나지 못하다가 이날에야 동경으로 왔던 것이다. 상의 숙소는 구단(계단이 9개) 아래 꼬부라진 뒷골목 이층 골방이었다. 이 '날개' 돋친 시인과 더불어 동경거리를 산보하면 얼마나 유쾌하랴고 그리던 온갖 꿈과는 딴판으로 상은 '날개'가 아주 부러져서 기거도 바로 못하고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전등불에 가로비 친 그의 얼굴은 상아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염이 코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의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보아서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피디아스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 사실은 나는 뒤비에의 '골고다의 예수'(깡마르고 죽음을 앞둔 예수)의 얼굴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상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하략)

 

(감상: 위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만다. 보성고 동문이었던 김기림, 이상 작가는 1937년 이상의 만 27세로 생을 마감하기 1달 전, 동경의 이상 하숙집에서 마지막으로 만나 영원한 사별을 하게 된다. 서울을 다니러 가는 김기림에게 이상은 마지막 말을 한다. '그럼 다녀오오, 내 죽지는 않소'. 김기림의 '이상'에 대한 수필은 이상을 애도하고 상실된 자아를 치유하며, 이상의 못다 한 이야기를 아프게 썼을 것이다. 수필의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와닿는다.

 

'허무 속에서 감을 줄 모르고 뜨고 있을 두 안공과 영구히 잠들지 못할 상의 괴로운 정신을 위해서 한 암담하나마 그윽한 침실로서 그 유고집을 만들어 올리는 일이다.

 

나는 믿는다. 상은 갔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오늘도 내일도 새 시대와 함께 동행하리라고.')

 

<이상의 모습과 예술> '김기림의 수필' 부분

 

엷고 희어진 얼굴에지 저분한 검은 수염과 머리털, 뼈만 남은 몸뚱아리, 가쁜 숨결...... 그런 속에서도 온갖 지상의 지혜와 총명을 두 낱 초점에 모은 듯한 그 무적한 눈만이, 사람에게는 물론 악마나 신에게 조차 속을 리 없다는 듯이, 금강석처럼 차게 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생과 조국과 시대와 그리고 인류의 거룩한 순교자의 모습이었다. '리베라'에 필적하는 또 하나 아름다운 '피에타'였다.

 

얼마 안 가 조국은 그가 낳은 이 한 사람의 슬픈 천재의 시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지상은 그릇 이리로 망명해 온 '쥬피타'를 다시 추방하고 만 것이다. 그의 짧은 생애는 그러나 그가 남긴 예술에 의해서 드디어 시간을 초월할 수가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겨우, 말할 수가 있다고 하면 '영원한 이상'의 얼굴을 무시로 쳐다보면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그가 그의 요절로 하여 우리에게 남긴 너무나 큰 공허와 아까움의 천만분지의 일도 지워주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랴?

(1949.3.15. 김기림)

마치며: 모더니즘 이론가

김기림 시인은 'T.S. 엘리엇'에게서 영향을 받아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를 주로 썼으며 모더니즘 시 운동의 이론가이자 모더니즘을 실천한 시인이다. 해방 후 중앙대학교와 연세대 교수,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6.25 한국 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하였으나 시기와 원인은 불명이다.

 

2년 선배인 김기림은, 이상의 삶과 문학에 대해 '차마 타협할 수 없는 더러운 세계와 현실의 등 뒤에 돌아서서 킥킥 웃어주었으며 때로는 놀려주면서 달아나는 것이었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1939년 6월호 '여성'에는 이상이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 4편이 '이상 서간'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편지에는 사랑과 정에 굶주렸던 이상의 고독한 마음이 잘 배어 있다.

 

'형(김기림)이 이 편지를 보았을 때 아마 뒤이어 '기상도'의 교정을 보아야 될 것 같소. 형이 여기 있고 마음 맞은 친구끼리 모여 조용한 '기상도의 밤'을 가지고 싶은 것이 퍽 유감되게 되었구려. 우리 여름에 할까?

 

여보! 편지나 좀 하구려! 내 고독과 정적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소? 자,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굿바이.

 

(참고문헌: 이상서간/ 조광/ 나무위키/ 이상선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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