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시인 "피천득" 작가는 일상에서의 생활감정을 친근하고 섬세한 문체로 곱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로 인해 그의 수필은 서정적, 명상적 수필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섬세하고도 다감한 문체로써 서정의 세계를 수필화하고 있다.
금아 선생의 수필세계는 나날의 세계다. 그것은 나날의 삶에서 우리가 겪는 작은 일들, 그중에도 아름다운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교수)
수필 <봄>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둔한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여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자루 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일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사십까지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93%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사십 년이라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봄이나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사천 년 전 루이스가 이국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라는 화려한 말을 써본 것이다. 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 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인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 ~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오는 봄!
(감상: 봄을 인생의 젊음에 비유한 서정적 수필이다. 찬란한 봄의 약동을 젊음의 아름다움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는 '밀레이'와 '토마스 엘리엇의 시를 인용하며 수필을 시작한다. 이들은 아름다운 봄이 와도 인생은 여전히 슬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천득 작가는 이를 부정한다. 작가에겐 봄이란 젊음이고 청춘이며 소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봄을 찬양한다. 자신은 나이 먹은 노인이지만 매년 오는 봄을 통해 젊음과 청춘을 즐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비록 청춘은 지나갔지만, 매년 오는 봄을 통해 마음의 청춘은 다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봄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무감각, 무기력을 깨우는 봄은, 젊음과 열정으로 자신을 태우는 불꽃이 되는 것이다. 매년 오는 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찬란한 쇼인도를 구경하는 기쁨이 아닐까. 비록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시 <가을>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수가
하늘이 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감상: 파란 하늘이, 그것도 가을의 하늘이 호수에 비춰, 그렇지 않아도 파란 호수 물을 '저리도 파랄수가' 없게 만들었다. 언제나 호수 물은 파랗지만, 유독 가을에 더 파란 것은 '가을하늘'을 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논리가 순진한 동심의 언어로 전개되었지만, 묵직한 시적 감동이 된다. 겉으로는 순수하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그 안의 내재된 강력한 힘은 피천득 문학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수필 같은 시, 시 같은 수필
'나는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하여 가끔 글을 써 왔다.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발표하였다. 시나 수필이나 다 나의 어쩌다 오는 복된 시간의 열매들이다.'(수필집 '금아문선'의 서문 '신판을 내면서'에서, 피천득 작가는 자신의 '문학관'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하여 쓰는 글'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면서, 시와 수필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피천득 문학의 특징이다. '수필'은 계획 없이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느낌, 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이며, '시'는 형식의 구애를 철저히 받는, 수필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지만,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은 수필과 유사하다. 이러한 대조적인 두 장르, 시와 수필이 피천득 문학에서는 조화롭게 수용되고 있다. 수필 같은 시, 시 같은 수필의 문학이다.
마치며: 순수한 소년의 작품세계
피천득 작가는 자신의 유명한 수필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시세계로 표현하는 시인이며, 97세까지 살았지만 작가의 수필 세계는 정말로 '순수한 소년'의 작품 세계에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필가다.
그의 작품세계의 언어는 너무 단순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고, 우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매우 강력한 힘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꾸미는 수사학적인 장식 없이 실제 자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은폐를 깨면서 솔직함으로 소소한 이야기 속에 있는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문학세계를 그리고 있다.
(대표적 수필) '여성의 미':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옴. '플루우트 플레이어': 지휘자보다 무명의 연주자를 택하겠음. '가든 파아티': 영국 대사관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 축하 가든파티에 참석한 소희를 씀. '구원의 여인상': 성모 마리아상과 같은 구원의 여인상을 찾음.
(참고문헌: 한국의 명수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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