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나 매체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남편들이 의외로 많다. 죽자 사자 하며 사랑하던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저 멀리 다른 동네 이야기가 된 지 오래고, 힘들게 일해도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결혼하고 시간이 지나면 왜 이렇게 무시당하고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예상외로 많은 걸까? 이상 소설의 '날개'에서는, 날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삼각형의 욕망'으로 '나'를 들여다본다.
모든 인간은 욕망이 있다. 멋있는 옷을 입고 싶고, 비싼 차를 타고 싶고, 좋은 집에 살고 싶은 무한한 욕망 이 있다. '삼각형의 욕망'은, 프랑스 비평가 '르네 지라르'의 이론이다. 주인공의 욕망이 중계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간접화를 거쳐 욕망의 대상에 도달하는 이론이다. 현실에서도 개인의 욕망이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CF주인공을 모방해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광고가 욕망의 중계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신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욕망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낭만적 거짓'에 빠진다. 위대한 소설은 그런 낭만적 거짓이 가득한 사회를 '소설적 진실'을 통해 일깨워 준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아내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스스로의 인간적인 소유권과 사회성이 없는 반면, 아내는 '나'를 지배하고 사육하는 위치에 있다. '나'는 박제의 무력과 감금된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더덕'거리며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을 표출한다. 아내라는 구속성에 맞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아내는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약을 줬다. 아달린을 먹고 공원에서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 집에 갔는데 보아서는 안될 장면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나의 멱살을 잡고 물고 뜯으며 발악을 했다. 나는 마구 쏘다니다가 미쓰코시 옥상에 올라 내가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해 보았다. 나는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개는 한 인간이 외부 세계로 부터 단절된 개인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1930년대 모더니즘 심리주의 소설로, 현실을 초월한 잠재의식의 독백이다. '나는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는 소설 첫 부분 구절이, 화자인 '내'가 고립되고 소외되었음을 밝힌다. 이런 사회관계는 공동체적 의식이 소멸된 근대 도시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이다. 그는 외부의 세계, 즉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고, 개인으로서는 역사가 없고, 직업이 없으며 생활도 없다.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그의 욕망은 모두 아내를 향하는 왜소한 것이다. 다른 어떤 욕망이나 이상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다. 미쓰코시 옥상에서 '나'는 문득 날고 싶어 진다. 이상과 욕망을 되찾고 자신의 날개로 '한 번만 더' 날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박제와 무력과 유폐된 시간으로부터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 거릴 수 있는 탈출의 욕망이며, 아내라는 구속성과 거짓됨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자아의 확인이자 건전성에 대한 욕망인 것이다.
'삼각형의 욕망'과 천재 시인의 일생
'날개'에서의 '나'는 아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중계된 욕망'이다. 주체와 중계자 사이에 경쟁 관계가 없는 '외면적 간접화'의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아내의 속박에서 벗으나 세상에 스스로 날아 보고자,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추구한다.
작가 이상의 실제 인생을 보자면, 과연 그가 실천적이고 희망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죽기 전까지 병마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접대부와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인생은 처참했다. 1910~1937년 생애에서 폐병의 각혈로 인한 고통은 너무 심했다. 일본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구속되었다가 일본 병원에서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영향은 그의 문학 작품 속에서도 특유의 몽롱한 문체에서도 드러난다. '날개'의 작품이 탄생된 배경에는 작가 자신의 일생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이상 자신이고, 이상의 여자는 '금홍'이라는 여자였다. 3년간의 금홍과의 동거 생활이 날개의 바탕이 되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이상 작가는 온천에서 몇 달을 방안에 틀어 박힌 채로 사회와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금홍과 건강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몸이 좋지 않은 '나' 이상은 대리만족이라는 변질된 쾌락을 느꼈다고 한다. 건강한 남자를 통한 삼각형의 욕망인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과 건강한 육체를 매개해서 '간접화된 가짜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 (여러 참고서적을 찾아보면 변질된 쾌락을 이야기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상 작가의 긍정적인, 낙천적인 성향을 , 확대 재생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마치며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저 욕망에 그치기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삼각형의 욕망'에서는 누군가의 매개체가 있기에 우리가 욕망이라는 것을 꿈꿀 수 있다고 증언한다. 우리가 꿈을 꾸고 바라는 욕망이라는 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엇 인가를 보고 누구를 닮고 싶다거나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중계를 받고 동일화되기 바라는, 욕망의 삼각형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과 '수련 별곡' (0) | 2023.04.29 |
---|---|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 구조 (1) | 2023.04.28 |
노래로 부르는 "시", 박두진 시인의 '해'와 '하늘' (1) | 2023.04.25 |
정지용 시인의 '시계를 죽임'과 '여승'의 백석 시인의 "시 세계" (0) | 2023.04.23 |
역사적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원령 공주)" (2) | 2023.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