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MBC 가요 대제전이 상암동 드림센터와 잠실 주 경기장 이원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이날 엔딩 무대로는 트로트 여신 송가인과, 국카스텐 하현우의 소름 끼치는 명품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펼쳐졌다. '해야 솟아라' 한 구절 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진정한 장르 대통합 전율 콜라보였다. 박두진 시인의 '해'는 음악을 만나자 다시 밤하늘로 솟구쳐서, 굽이 굽이 흩날리며 환한 빛 춤을 추었다. 시인의 '해'와 '하늘'은 아름다운 노랫말이 되어 천상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에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그렇지 않아도 밝은 '해'인데, 말갛게 씻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깨끗할까? 산 너머에서 본, 시꺼먼 더러운 것들을 씻어 냈으니 번쩍번쩍 이쁜 어린 얼굴로 다시 솟아 시작해 보는 거야, 나의 태양아!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갇혀있는 밤은 싫다. 네가 훤하게 비추는 푸른 산은 혼자 있다 해도 무섭지 않고 아무 걱정도 없다. 밝고 환한 너만 있다면, 사슴과 칡범과 함께 뛰어놀며, 꽃도 새도 모든 짐승들도 불러서 젊고 좋은 날을 즐겨 보리라.
많은 분들은 이 시를 해석할 때 역사적 배경을 중요하게 평하기도 한다. 물론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교과서에 수록되다 보니 애국심을 강조하는 국가관의 목적으로 교육되는 측면도 있다. 어둠은 일제강점기이고 해와 청산은 조국 광복이라고 평하는 분들이 많다. 어쨌든 어떤 어려움에 처한 화자가, 어두운 일들을 걷어내고 환한 좋은 일만을 간절히 소망하는, 그래서 가족과 지인들과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화자의 다짐이자 믿음의 표현을 담고 있다. '너를 만나면'에서 사랑하는 네가 나와 함께 한다면, 세상을 재미있게 함께 살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
<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 여릿/ 멀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닥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자연을 찬미하며 형상화한 아름다운 시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 하늘은 나에게로 다가온다. 천천히, 천천히 멀지만, 힘들어도 천천히 온다. 마치 나의 미래가 푸른 호수처럼, 푸른 하늘처럼 점점 밝아오는 것 같다. 그 푸름에 안긴다. 내 청춘도 호수 같은 하늘의 푸름에 물들어 가고 있다. 그 하늘의 숨소리인 햇볕에 목을 추스르고, 긴 숨으로 몇 번이고 하늘을 마신다. 드디어 나도 하늘처럼 깊고 높은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푸른 하늘이 된다.
친일로 가는 시국에서, 절필을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파묻혀 자연을 찬양하고 만끽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처럼, 인간도 자연과 한 몸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순수 서정시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도 아름다운 노래로 탄생했다. 서유석 작곡으로 양희은 가수가 노래 음반을 냈다. 양희은 가수의 맑은 목소리와 서유석 가수의 개성 있는 음색의 콜라보가, 10월의 하늘처럼 높고 푸르게 다가온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의 시 구절처럼 가슴으로 하늘이 스며오는 감동의 노래인 것 같다.)
청록파 시인과 '안성의 박두진 문학관'
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승무' 조지훈 시인, 향토적이고 목가적인 '나그네' 박목월 시인, 자연의 서정 '하늘'의 박두진 시인들이 결성한 '청록파' 3인방은,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목가적인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남겼다. 우리말의 특징을 잘 살려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심성과 순수한 인간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쓰고자 했다.
박두진 시인은 20여 권의 시집에 1,00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수석을 좋아해서 수석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의인화해서, 수석 시집 300여 편을 3권의 시집에 담았다. 경기도 안성이 고향이어서 '박두진 문학관'도 고향 안성에 있다.
마치며
박두진 시인은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죄악이라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통한 정화와 치유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연과 어울리는 풍경 속에서 묵은 상처와 아픔은 치유되며, 인간이 구원받고 있다는 종교적인 내용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런 폭넓은 자연의 서정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재해석되며, 우리들과 연결되어 마음속을 정화, 치유해 주는지 모른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 구조 (1) | 2023.04.28 |
---|---|
행복하지 못한, 이상 작가의 '날개'와 '삼각형의 욕망' (0) | 2023.04.27 |
정지용 시인의 '시계를 죽임'과 '여승'의 백석 시인의 "시 세계" (0) | 2023.04.23 |
역사적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원령 공주)" (2) | 2023.04.21 |
사랑 꾼 시인 백석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0) | 2023.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