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뛰어난 시인으로 많은 작가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현대 시인이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이고 필명이 백석이다. 일제 강점기 때 창작된 작품들이 한국 문학계에서 명성이 높으며, 화가 이중섭, 시인 신경림, 동화작가 김윤섭, 윤동주, 안도현 등이 백석의 영향을 받았다.
백석의 여인 '자야' 일천억 원 땅, '길상사'로 시주
백석시인은 경상남도 통영을 아주 좋아했다. 통영에는 백석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고, '통영' 연작시 3편과 '바다', '남행시초', 수필 '편지' 등을 남겼다. 이는 통영에 그가 사랑했던 란(박경련)이라는 여인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경련과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백석과 함께 '조선일보'에 근무하던 가까운 친구 신현중과 박경련이 결혼하자 백석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백석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한 여인 중 한 명으로, 법정스님에게 '길상사'를 시주한 김영한(자야)이 있다. 백석이 사랑했던 여인 김영한은 '자야' (김영한)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또 다른 신화의 이름을 얻는다. 호 '자야'는 백석이 일본유학 시절 공부한 '이백'의 시에서 나오는 여인의 이름이다. 김영한은 광복 후에, 삼청각, 청운각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인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했는데, 1,000억 원 이상인 거액의 대원각을 조계종에 시주하여 길상사라는 사찰로 개조하여 불가의 도량으로 만들었다. '1,000억 원이라는 돈도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언제 백석이 가장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따로 때가 있나' 등의 말을 남겼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상과 사랑에 대한 의지와 소망을 노래한, 모더니즘 시풍의 후기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 감상) :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그녀를 그리워하는 쓸쓸함과 낭만적인 정서들이 어우러져 멋진 작품이 되었다. 세상살이에 지쳐서 여유와 넉넉함을 잃어버린 가난한 마음과 정신을, 시적 화자는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는데 '눈은 푹푹 날리고' 그녀는 곁에 없기에 '나는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신다' ('눈'은 나타샤의 그리움의 소재로, 암울한 가혹한 현실의 시련으로 표현되었다). 그녀와 함께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 '나타샤가 아니 올리가 없다' 그녀도 내 뜻에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며, 눈 내리는 밤에 그녀를 기다리며 그리워한다. (시적 화자는 이미 이별을 예감했거나 헤어졌을 수도 있다. 화자 내면의 목소리로, 세상을 떠나 산골로 가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나'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사랑의 순수함의 의지를 드러낸다. '눈과 흰 당나귀'의 순백의 이미지는 사랑의 실현과 순수한 세계로의 열망을 부각한다. 눈, 흰 당나귀, 나타샤라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는 이 시의 독특한 색채를 띠고 있으며, 현실과의 단절감을 끝내 '산골'을 이상향으로 그리며 고독한 우수를 그려낸 서정시이다.)
백석시인과 자야의 사랑
백석 시인의 여성관계를 표현하듯이, 상당이 다양한 여성들이 자기가 저 시의 주인공인 '나타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백석 시인이 러시아 문학을 동경해 러시아 문학 번역에 상당한 조예가 깊었으며, 러시아 문학 번역에도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 실존 인물이 아닌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등장인물인 '나타샤 로스트바'를 모델로 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백석시인의 나타샤'는 '자야 김영한'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정한 혼인을 거역할 수 없어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자야에게 달려가서 만주로 도망가서 살자고 한다. 하지만 김영한은 사랑하는 남자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떠나 버린다. 백석은 소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백석이 진향(김영한의 예명)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마누라야 죽기 전에 이별 따위는 없을 거야' ㅡ안도현의 '백석 평전'중에서ㅡ
'그날부터 '자야'는 이 세상에서 우리 둘만이 서로 통하는 나의 애칭이 되었다.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뿐이었다' ㅡ김자야 '내 사랑 백석' 중에서ㅡ
마치며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 한글을 지키고자 한 이들의 노력을 독립정신의 차원에서 기리고자 한다면, 소월과 백석의 민족시를 같은 반열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소월은 서구 자유시의 범람 속에서 우리 전통 민요를 발전시켰고, 전통 정서를 서정의 맥으로 붙들어 매어 두었다. 반면 백석은 가혹한 일제 침략 속에서도, 우리 민족 공동체 정신과 생활 속 평북 방언을 '시'로 형상화했다. 일제가 그렇게 집요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던 우리의 정서와 언어를 지킨 시인에게 깊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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