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아버지의 품격

e길 2024. 5.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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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품격
 

서른이 다 되어가는 취업 준비생이 있었다.
5시쯤에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약속이 있어 나가시고, 아버지만 계셨다.
아버지는 맛있는 것 시켜 먹자고 하셨다.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 돈으로 외식을 하는 상황이 불편했지만,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하셔서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시킨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족발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떠난 지 30분이 넘었다고 한다.
비가 와서 그런가 하고 아버지와 어색하게 TV를 보며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제야 초인종이 울렸다.
좀 따지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달 온 사람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에 홀딱 젖어있었고,

대뜸, '죄송합니다. 오던 길에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수습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식은 먹기에 민망할 정도로 붙어 있었고 또 엉망 되어 있었다.
뭐라 한 마디도 못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음식을 시킨 저희 탓이요.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당신의 책임감으로 오늘  우리 부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소.'
 
그러면서 아버지는 음식값과 세탁비까지 건네주었다.
그러자, 배달원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리다가,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아버지(Freepik)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세상에 아버지 같은 분이 계실까?
아버지는 평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절대로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sns에 올라온 실화 글이다)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 e길 시.


식사는

아쉬울 때

부족하다 싶을 때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해

 

채운 배

간절함은 사라지고

꽉 찬 솥단지 끓어 울듯

틈 없는 속 부글부글 넘치는 거여

 

마주 앉은 밥상머리

시작된 아버지 말씀

끝나지 않은 여름날의 장마

언제쯤 그치려나

비 오는 날의 해바라기

 

단단한 것은 
언젠간 부서지지만
마음 비운 물

높은 곳에 떨어져도
상처받지 않아
 
저 
휘몰아치는 강물을 봐
굽이굽이 품어 안으며

아픔 없이
도도히 가고 있지 않느냐
 

소리 내지 마라

물은 부모와 갈라져서
졸졸 속울음 내는 것이니
깊은 것은 소리가 요란하지 않은 법

 

외딴 산속

아주 오래된 긴 수염 노인
아궁이에

자기 목소리 태우는 것처럼

퉁퉁 부은 소릴랑

버스에 태워 두고 내려라

 

뜨거운 날의 햇살이 갈증으로 다가오면

불현듯

아버지 밥상머리

단비가 그리워지는

인생 가을의 쓸쓸한 저녁 식탁!

 

 

(감상: 배가 부르면 모든 일에 나태해진다. 비우는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 그때는 잔소리라 생각하고 빨리 끝나기를 바랐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귀한 말씀이었다. 그 이치에 맞는 말씀 되새기며, 지금의 나는 외롭게 식탁에 앉아있다. 아버지와의 그 밥상이 그립다.)

 

마치며

우리네 아버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한 아버지의 품격이 있었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 잘 이끌어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으나,

당시에는 그 깊은 마음을 알지 못했으니.

 

지금의 시대는 자식들 스스로 다 잘해나가는 것 같아, 잔소리할 기회가 없어 서운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등뒤에서,

어깨너머로,

응원하고 지지하며, 조용한 아버지의 품격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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