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시절
우리나라 남자들은 나이가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의 군대를 간다.
사람들은 보통 '군대는 누구나 가는 것이고 뭐 조금 있으면 금방 제대해서 나오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당사자는 평생 잊지 못할 고통과 인내를 강요받는 일생일대의 큰 일이다.
겨울이 오고 혹한이 찾아오면 군대 간 아들을 둔 부모는,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자식 걱정을 한다.
또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또래의 젊은이들이 데이트하고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아들의 잃어버린 젊은 청춘의 시절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르바이트로 번 35만 원
2022년 9월 19일 아들이 군대를 갔다.
평소 입도 짧고 몸이 약한 아들을 군대 보내며 많은 걱정을 했다.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집 책상 위 노트북 밑을 한번 보라고 해서 보니, 현금 35만 원이 있었다.
아들은 군대 가면 돈도 필요 없으니 아빠 용돈이나 하라고 하였다.
1시간 정도 거리 대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주말이나 방학 때 휴식 줄여가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책값과 용돈을 스스로 해결했었다.
아들에게는 그 35만 원이 엄청 큰 액수였고 정말 소중한 돈이었다. 한 푼도 쓸 수 없는 보물 같은 돈이었다.
서울 근교의 부대에 자대 배치를 받고 12월 3일 첫 영내 면회가 허용되었다.
부지런히 설레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아들을 반갑게 만났다.
하늘에서는 소복소복 복스러운 첫눈이 내리고 있었으나, 되돌아오는 길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봄이 오는 첫눈> e길. 시
북한산이 머리 위에 하얗다
얼어 쌓인 눈
돌아가는 걸음 붙잡는다
눈 위 눈이 흐른다
점잖던 가랑눈이 성난 눈보라로 휘몰아친다
반짝이는 첫눈이 하람과 왔다
입대 후 첫 면회
입 짧고 추위 약한 아들의 이마에
눈 녹은 마른 계곡이 흐른다
모자에도 이마에도 작대기 두 개
제일 힘들다는 훤한 구보 길
얼마나 뛰었으면 뻔질 하다
언제쯤 집에 가려나 혼잣말에
산으로 간 내 시선은 얼어붙은 계곡
물을 가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흐르게
멈추는 것은 슬프다
재촉해서 흘러야 봄이 온다
영혼 없는 얼음 꽃은 향기가 없다
하지만 무색무취는 소리를 기억한다
멈추어진 시린 청춘 뒤엉켜 애닯지만
설레이며 익어가는 고드름 노랫소리
비록 색옷이 없어 알몸으로 떨어도
또옥~ 똑 좌탈입망 봄을 그린다
언 땅 눈 속엔 바람 막는 둥지가 있다
얼어붙은 꿈틀거림을 품어 숙성한다
너태 쌓인 날들을 찰나의 연으로 벗으며
애틋한 촛불의 노래를 부른다
타내리는 눈물의 연주는 곧 색을 낳는다
그래 저 눈을 사랑해야 한다
너도바람꽃을 마중 가자
진관사 옥녀봉에
하얀 꽃이 살포시 웃는다
아들아!
봄이 제 오신다.
(감상: 첫눈이 오면 봄은 곧 온다. 면회 후 돌아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언제나 집에 가려나' 아들의 혼잣말에 가슴이 아파, 얼어버린 계곡을 바라본다. 얼음은 아들처럼 발이 묶여 봄을 기다리고 있다. 체력이 좋지 않아 매일 뛰는 구보가 힘든 아들의 이마에는 없던 두 줄 주름이 생겼다. 자유롭지 못한 집단의 차디찬 세계에서 얼음처럼 뒤엉켜 애달프게 단체 생활하지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봄이 오는 고드름 노랫소리 들린다. 아무리 얼어 추운 땅에서도 오히려 찬 눈이 둥지가 되어 봄의 싹을 틔운다. 힘든 군대 생활이 오히려 아들을 더 숙성시켜, 또옥 ~ 똑 얼음이 녹아 봄이 오는 촛불의 노래로 축복한다. 그래 이 힘든 생활을 사랑해야 한다. 봄이 오는 하얀 너도바람꽃이 피어난다. 아들아! 이제 봄이다.)
마치며
젊은이들이 들뜨는 12월에는,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의 마음도 휘황찬란한 사회가 그렇게 그리워진다.
캐럴송이 울리고 반짝반짝 흥청 되고 즐기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고 심란해진다. 특히 여자 친구가 있는 병사의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이 추운 겨울, 아는 군인을 만나거나 통화할 일이 있다면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하자.
연말연시에 따뜻한 차 한잔 같이 하면서 수고한다고 말한마디 하는 향기 나는 사람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