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창밖의 여자'와 엘리엇의 '황무지' (하)

e길 2023. 11.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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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오래 사는 '슬픔'

아폴론 신은 '쿠마에 무녀'를 몹시 예뻐했기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무녀는 신에게 한 줌의 모래를 들고 와서, 이 모래의 숫자만큼 생일을 갖게 해달라고 말했다.

 

무녀는 오랜 생명만을 요구했지 젊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죽지 않았고 계속 육체의 크기만 줄어들었다.

마침내 목소리만 남았다.

영원의 긴 생명의 축복은 그녀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저주가 되었다.

 

'황무지'의 詩 첫 부분에 언급되는,

쿠마에 무녀(Cumaean Sibyl)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쿠마에에서 살았으며,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쿠마에의 무당 여인' 스토리는, 엘리엇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강렬하게 대변한다.

그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난 죽고 싶어'라고 소리친다.



미켈란젤로는 1510년 이 여인을 그렸는데, 아주 억센 근육질의 늙은 여자로 묘사했다.

죽을 수 없는 그 허망한 저주의 세월을 견디며 그녀는 아이들의 조롱 속에서 책을 펼쳐서 보고 있다.

 

못죽는 슬픈 '쿠마에 무당'(미켈란젤로)

 

 

아폴론 신에게 죽지 않고 사는 '영원한 생'을 선물 받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깨닫고 후회로 살아가는,

선물이 아니라 '저주받은 여인'의 상을,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는 놓치지 않고 명작으로 표현한 것이다.


엘리엇의  詩 '황무지'는 세계 모든 대학의 교과서

엘리엇 시인은 16세 때 하버드대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프랑스 소르본느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수재였다.

 

미국계 영국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영문학의 위대한 문학가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모든 대학교에서 교과서처럼 쓰인다.

대표적인 저서가 '황무지'이다.

 

결론: 삶과 죽음과 사랑의 순리

 

(엘리엇 詩 '황무지'의 의미)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하다고 했던 것은, 죽은 나무를 깨우기 때문이다. 그냥 죽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저주라고 생각했다.

 

겨울에 죽은 것을 왜 봄에 살려 내려고 하는가.

죽어 있는 게 좋은데 왜 다시 살아나야 하는가.

평화가 없는 이 땅에 다시 생명을 싹 틔워야 하는가.

 

(조용필 '창밖의 여자'의 의미)

 

5 공화국이 겁을 주던 시대,

숨죽이고 죽은 척해야 하는 시대에,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사랑하는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5.18 광주 항쟁과 신군부 집권의 암울한 시기에, 한 맺힌 외침의 창밖의 여자.

님은 떠났는데, 핏기 없는 님의 흰 손만 유리창에 어린다.

차라리 떠날 바에야 그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지, 무정하게 가버린 님이 원망스럽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쿠마에 '무녀'의 의미)

 

죽고 싶다.

아폴론 신에게 수백 년 살 수 있는 영생을 얻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저주받은 여인과 무엇이 다르랴.

오래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저지른, 죽음의 순리를 무시한 추태였다.

몸은 닳아 없어지고 결국 목소리만 남은 가여운 여인은 절규한다.

'난 죽고 싶어.'

 

마치며


엘리엇의 詩는 겨울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통렬하게 질문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아니 모든 생명에게, 죽음은 저주이고 삶은 축복인가.

그 반대는 아닌가.

 

엘리엇은 준비 없이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봄을 원망하고,

조용필은 갈려면 님의 흰 손으로 잠들게 하지, 그냥 떠났다고 절규의 노래를 한다.

쿠마에 무녀는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젊음이 없는 삶은 '저주'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젊음이 없는 영혼으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삶을 받아들이겠는가?'

나중에 몸은 거의 없고 목소리만 남아있어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냐고 노래하는 조용필 가수와,

왜 죽어가는 나무를 그냥 죽게 두지, 잔인하게 살려 내냐는 '엘리엇'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평화 없이, 생명을 살려내는 봄은 잔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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