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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뭉크'의 "절규"

e길 2023. 6. 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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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세계의 예술은 풍요(belle e`poque)는 끝나고 불안의 시대가 도래된 시기였다.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Munch. The Screem)"는 1983년 그림으로 초기 표현주의 작품이다. 핏 빛의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불안에 떨며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머리를 감싸 쥐는 인물을 표현하였다. 오늘날 까지도 명화로 회자되며, 세계 10대 그림에 속한다고 한다. 

뭉크의 '절규'

절규

"해 질 녘, 친구 두 명과 함께 일몰을 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빨갛게 핏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피오르와 마을 위로 '불'과 '피의 혀'가 솟구쳤다. 나는 공포에 질려 다리 난간으로 다가갔다. 친구들은 무심히 계속 걸었고 나는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떨면서...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그 순간, 자연을 관통하는 무한하고 강력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풍경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큰 외침을 들었다"

'뭉크'의 설명에 따르면 '그림'속에서 비명을 지른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인간은 자연이 지르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귀를 틀어막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친구 둘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태연히 걷고 있는데, 왜 뭉크만 자연의 비명소리를 듣고 불안해했을까. 그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환청이 들렸는지, 아니면 항상 불안하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뭉크의 병증 때문이 아닐까.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에게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며 소리치는 비명'은 현실에선 큰 공포가 될 수 있다. 뭉크는 낭만적인 '붉은 노을' 마저 핏 빛을 연상하며 불안에 떨어야만 했던 병약한 화가였다.

자연의 비명과 뭉크의 슬픔, 공포

뭉크는 1863년에 노르웨이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지 5년 만에 폐결핵으로 엄마를 잃었다. 9년 후 뭉크를 보살펴 주던 누나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병약했던 뭉크는 자신도 얼마 못 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거라고 공포에 시달렸다. 훗날 뭉크는 삶을 회고하며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곁에는 공포와 슬픔과 죽음의 천사들이 같이 했으며 항상 따라다녔다'라며, '봄날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도, 여름날 정열의 태양 앞에서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라고 언급했다.

그림 '절규' 감상

한 남자가 울부짖고 있는 모습은 마치 피해 갈 곳이 없는 인간 자체의 두려움과 공포인 것 같다. 일그러진 얼굴에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안구도 없는 시체 같은 몰골의 빼빼 마른 공포에 질린 한 남자와는 대조적으로, 평화롭게 걸어가는 두 남자는 무슨 일 있냐는 듯 앞서 걸어가고 있다. 핏 빛 노을을 배경으로 마치 해골을 연상시키는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절규와 비명소리가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마치 무덤에서 막 나온 유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 배경의 풍경은 노르웨이 오슬로 이케베르크의 '오슬로 피오르'이다.

초기 표현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춤을 추는 듯한 율동감으로 색과 선, 사색된 남자의 절규로 격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의 구성을 사선으로 하여 대담함을, 빨강, 노랑, 파랑의 배색을 통하여 강한 효과를 주고 특히 핏 빛 석양은 공포와 불안과 절망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였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두 명의 인물들로 인해 전체적인 그림의 울부짖음이 더욱 강조되었다. 인간의 공포를 최대치로 솔직하게 끌어낸 작품이며, 이 처절한 '절규'는 '뭉크' 자신이기도 하며 우리들의 절규이기도 할 것이다.

뭉크 그림

마치며: 강렬한 색채, 율동감

뭉크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밝아지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와 누나를 떠나보내고, 20대에 아버지를, 30대 애는 남동생마저 잃었다. 가족이 하나 둘 떠나는 것을 보면서 뭉크는 불안과 공포,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신경증을 달고 살았던 뭉크는 절망, 절규, 질병, 늙음에 관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뭉크는 여성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며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혼자 살았다.

뭉크는 당시 예술계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커 노르웨이 정부와 프랑스 정부에서 훈장을 받았으며, 유럽의 모든 도시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또한 인간의 감정을 왜곡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 율동감이 느껴지는 선으로 표현하여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양식은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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