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연 생태 시인 '정현종' (2)

e길 2023. 6.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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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 시인 '정현종' 작가는 1965년 '독무'로 등단했다. 재래적인 서정시의 미학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그의 시는 출발했고, 그 후에는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는 초월의 가능성을 추구하였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며 시의 지평을 계속 넓혀왔다. 초기의 시가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관념적인 특징이라면, 1980년대 이후에는 구체적인 생명현상을 다루고 있다.

 

정현종 시인은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문학과 철학에 깊은 공감을 느꼈으며 영향을 받았다.

 

'정현종 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숨'과 '가벼움'.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썼다. '무거운 것 모두가 가볍게 되고, 모든 몸이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진정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알파요 오메가였다.'

 

<꽃을 잠그면> 정현종. 시

 

꽃을 잠그면?

 

누가 꽃을 잠근다

피어나는 꽃을 잠그고

바람을 잠그고

흐르는 물을 잠근다

저 의구한 산천을

새소리를 잠그고

사자와 호랑이를 잠근다

날개를 잠그고

노래를 잠그고 

숨을 잠근다

 

숨을 잠그면?

꽃을 잠그면?

춤을 잠그면?

노래를 잠그면?

 

그러나 잠그는 이에게

자연도 웃음 짓지 않고

운명도 미소하지 않으니, 오

 

누가 그걸 잠글 수 있으리오!

 

(감상: 잠그면? 감각, 정신, 탄력의 마비가 와서 여유롭지 못한 생활이 된다. 잠그면? 눈앞에 있어도 못 보고, 눈앞에 있어도 마비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마음을 잠그지 말고 열어라. 부담스러운 무거움에서 벗어나 가볍게, 편한 마음으로 해방되어라. 꽃과 바람과 흐르는 물과 의구한 산천과 사자와 호랑이와 노래하고 춤을 춰라. 가볍게 춤추는 새가 되어 '시'로 '숨'을 쉬어라.)

 

시는 앉은자리가 꽃자리다: 시적 순간, 탄력의 순간

 

정현종 시인은 어느 매체와의 대담에서 '시적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가 되기 전에 어떤 느낌이, 어떤 커다란 덩어리가 다가오는 때가 있어, 내게는 무엇인가가 저절로, 내 속에서 어떤 순간들이 저절로, 한 꽃이 피어나듯 대단히 환하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어. '시적 순간'이라는 것은 '앉은자리가 꽃자리'라는. 그런 상태가 되는 순간일 거야.'

 

지금 네가 앉아있는 자리가 곧 최고의 상태인 '최고의 꽃자리'라는 것이다. 시는 이미 너와 그 자리에 와있다.

'니체'적 의미에서 '삶에 대한 비극적 긍정'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루하고 비참하지만 '좋다'하고 살아내는 것, 살아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만들 수밖에 없다. '시'란 것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결국 '시'라는 것은 순간순간을 꽉 차게, 그렇게 살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무지개 마을의 물방울> 정현종. 시

 

물방울들은 마침내

비껴오는 햇빛에 취해

공중에서 가장 좋은 색채를

빛나게 입고 있는가.

낮은 데로 떨어질 운명을 잊어버리기를

마치 우리가 마침내

가장 낮은 어둔 땅으로

떨어질 일을 잊어버리며 있듯이

 

자기의 색채에 취해

알코올에, 피의 속도에

어리석음과 시간에 취해 물방울들은

떠 있는 것인가.

악마의 정열 또는

천사의 정열 사이의

걸려있는 다채로운 물방울들은.

 

(감상: 비가 온 뒤 햇빛이 비친다. 물방울들의 운명은 햇빛에 말라 없어지거나, 빛의 아름다움에 빠져 떨어질 소멸, 죽음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기의 색채에 취해' 순간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버린 것이다. 시적 순간도 바로 이런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물방울이 마르기 전 순간을 놓치지 마라. '인간'도 한순간이 기회냐, 나락이냐를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이 중요할 때가 있다. 자기주장의 색채, 알코올과 어리석음에 취하지 말고, 악마와 천사 사이에 있는 '물방울'을 잊지 마라.)

 

<마음에 이는 작은 폭풍> 정현종. 시

 

잠 깬 마루에

새벽 달빛 한줄기

번개 같다. 보이는 세계의 심연

부들부들 떠는 마음의 고요

뿔뿔이 끊어졌던 뿌리를 모은다. 

 

내 귀는 크고 또 커져

깃 속에 푸른 바람 품고 잠든 새의

꿈을 듣고 있는 그대의 꿈을

...... 듣는다

 

마음에 이는 작은 폭풍

막 태어나고 있는 움직임 ㅡ 영원한 내 사랑

 

(감상: '보이는 세계의 심연'은 보이는 것에 보이지 않는 길이 감춰져 있으며, '부들부들 떠는 마음의 고요'는 상대모순의 '역동적 고요'의 상태 즉 '정중동'이다. '내 귀는 크고 또 커져'는 시적 순간에는 조그마한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어 귀는 또 커진다. '막 태어나고 있는 움직임'은 막 시도, 현실의 내 느낌도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

 

<낙엽 그리고 도시의 우울> 정현종. 산문('날아라 버스야' 산문집 중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나무들은

이제 침묵의 깊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둘레의 공간을 조용함 속에 가라앉게 하는 것이니

우리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하는 봄에는 생명감에 겨워 무슨 숨 넘어가는 소리라도 내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에는 지는 잎을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계절의 뜻에 화답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나무들은 이제 침묵의 깊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둘레의 공간을 조용함 속에 가라앉게 하는 것이니 우리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다. (중략)

 

도시라는 건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으니 살아있는 땅을 죽이고 죽은 땅 위에 세운 것이며, 자동차라는 사신이 넘치면서 공기를 죽이고 있으니 살자고 쉬는 숨에 죽음이 아울러 들락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쓰리고 근질근질한 눈을 비비며 보는 낙엽은 인간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만들어낸 문명이라는 야만에 의해 재촉되고 있는 생명의 조락을 암시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저 시커먼 매연층으로 포장된 죽은 공간 속에 서 있는 플라스틱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는 플라스틱 이파리들일지도 모른다는 죄송한 생각을 하게 되는 가을이기도 하다. (1992년 정현종).

 

(감상: 인간의 욕망으로 도시는 건물과 자동차 등으로 땅을 죽이고, 공기를 죽이고, 매연 속에 플라스틱 나무를 만들었다. 인간의 만족할 줄 모르는 야만적인 욕심을 비판하고 있다.) 

 

마치며: 1970년대 가장 아름답게 흐른 물길 '정현종'

 

정현종 작가와 함께 4.19세대를 대표하는 '김현' 비평가는 '정현종의 시사적 자리는, 50년대를 휩쓴 서정주의 토속적 여성주의를, 유치환 박두진 김수영의 한문 투의 남성주의를 극복한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의 현실주의는 개인의 자유 위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며, 자기의 세계관을 억압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다. 정현종은 1970년대에 가장 아름답게 흐른 물길 중의 하나를 판다.'

(김현, '술 취한 거지의 시학' 중에서)

 

정현종 작가는 어느 대담에서 '김현' 평론가를 묻는 질문에 '김현' 평론가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가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건성으로 듣는 게 아니라 '경청'이라는 말뜻 그대로 아주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정현종 시인은 초기 시에서 보여준 사물과 의식과의 관계에 대한 실존적 관심에 머물지 않고, 80~90년대를 자기 시의 근원적인 탄력을 새로운 시적 지평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한국 시의 현대성을 성취함과 동시에 현대 세계의 환경이 처한 문제를 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나는 별아저씨'/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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