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의 작품은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에 이어 신라 정신의 '신라초', '동천'과, '현실로부터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세계를 지향'하는 설화 중심의 '질마재 신화'로 귀결된다.
'신라 정신'은 '영통(혼교)'이라 하여 '혼의 영원한 실존적 계속적 존재'로 산사람이 죽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신라의 통일도 이런 '혼'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라문화의 근본정신은 도교와 불교의 정신과 많이 일치한다. 하늘이 명하고, 지상 현실만을 중점적인 현실로 삼는 '유교적 세계관'과는 달리, 우주전체 즉 천지 전체를 등급이 따로 없는 한 유기적 연관체의 현실로 보는 우주관이다. 당시 '신라'는 '우주인, 영원인'의 인격 자체였던 것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신라 정신'의 의식으로 '풍류도(신라 화랑도)'를 작품에 정립하였다. 풍류도의 원천은 '혼'을 믿는 영통, 혼교 의식이며, 도교의 '신선사상'과 불교의 '윤회설 및 인연설'에 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영생주의'임과 동시에 '자연주의'의 의식으로 '풍류도'가 완성된다.
<신라초>
한국성사략 (뜻: 간략하게 쓴 별의 역사)
오백 년 내지 일천 년 전에는/ 금강산에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별은, 그 발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송학 이후,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추켜든 손보다 더 높은 데 자리하더니,/ 개화 일본인들이 와서 이 손발과 별 사이를 허무로 도벽해 놀았다./ 그것을 나는 단신으로 측근 하여/ 내 체내의 광맥을 통해, 십이지장까지 이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일탈한다. 일탈했다가는/ 또 내려와 관류하고, 관류하다간 또 거기 가서 일탈한다./ 장을 또 꿰매야겠다
(감상: 일천 년 전에는 (신라시대) '별이 내려와 길을 쓸었다'는 땅이나 하늘이나 '한 몸'이라 따로 구분이 안되었다. '송학 이후'는 '유교'가 들어오고 난 이후에는 '별'이 다시 올라가 버렸다. 일본이 들어와 별과 단절이 되었다. '십이지장까지 이끌어 갔으나'는 하늘과 '나'는 한 몸이라 하늘에서 별을 끌어내려 몸속으로 들였는데 다시 일탈해 가버렸다.
<질마재 신화>
신부 ('필자'의 안타까운 마음: '돌아보면 될 것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니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의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감상: 한국 여인의 '꿋꿋한 절개'와 '정절'을 담담한 이야기체로 말하고 있다. 오해로 인한 신랑의 조급함과, 달아난 신랑을 고통과 인내로 기다리다 열반(?. 고귀한 기다림)에 든 신부의 이야기다. 현실로부터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설화를 이야기꾼 화자가 들려주는 산문시 형식을 취했다.)
상가수의 소리(부분)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 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점잔 하게 하고 있어요. 명경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감상: '질마재'의 상가수(상여에 타서, 요령을 치며 곡조 하는)는 이승과 저승을 중재하는 자이다. 망자를 위로하고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무속인 역할을 한다.
서정주 시인은 근대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과 인간다움을 아쉬워하며, 질마재 신화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질마재 신화'는 시인의 유년 시절을 지배했던 무속적 샤머니즘을 모태로 우리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질마재'는 시인의 고향이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지상과 천상이 합일된 시공간이다. 시인의 작품이 설화나 신화, 역사를 현대적으로 변용해서 신라정신과 피의 정화, 산업화 시대의 물질만능사회의 모순에 대한 미학적 대응이라고 하겠다.)
마치며
어두운 '화사집'과 '귀촉도' 그리고 신라정신의 '신라초'를 지나 땅과 하늘의 합일 '질마재 신화'까지,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의 변화는 우리나라 현대시의 발전적 촉매의 역할을 다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산문(소설, 수필)은 '춘원 이광수'이고, 운문(시조, 한시)은 '미당 서정주'라고 여러 문헌에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현대시에 공헌을 한 거목의 시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며, 미당 서정주 시인과 관련된 '고은' 시인의 짧은 수필을 소개하겠다.
'시꺼먼 환상이라도 그것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수필. 고은)
'일본 지식인 현황을 신문 보고 짐작했다. 일본에는 참여문학이 전혀 없다. 사소설(일기체식)의 나라다. 그러나 소설은 한국보다 일본이고, 시는 일본보다 한국이다. 이런 지적에 황홀에 빠져서는 안 된다. 더 깊은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소월, 서정주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런 것 뒤에 더 위대한 시혼이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 닿아야 한다.'
(참고문헌: 미당 서정주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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