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유를 향한 '양심과 정직의 목소리' 시인 김수영

e길 2023. 5. 2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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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양심과 정직의 목소리' 김수영 시인은 현실과 역사 인식이 남달리 예민하고 강해서 '참여 시인'이라고 불린다. 자유와 양심, 정직의 키워드는 시인의 시 정신과 시 세계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4.19 혁명을 거치며, 시인은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시를 통해 당대의 상황을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

도봉구 '김수영 문학관'

자유가 있지만 자유가 없다

 

시인은 일상적인 전통적 서정시를 깨고 산문을 도입하고 비시적인 시를 쓰며, 시의 권위를 없애려고 속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대상에 부여한 의미를 바로 보지 않고 '나름으로 본다'는 비관습적, 비상투적인 대상 인식을 지칭하였다.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산문을 도입하고 있고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가 없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월평'에서 시인의 말)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여기에서 '풀'은 연약하지만 끈질긴, 오라는 데는 없지만 갈 곳은 많은 '민중'이다. '눕는다'는 자발적, 능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쓰러진다'는 수동적인, 못 일어날 수 있다) '바람보다 늦게 운다'는 풀이 저항하려고 뜨는 단계다. 하지만 현대시에서는 다른 견해도 가능하다. '풀'의 제목과 달리 '바람의 시'이기도 하며, 바람은 꽉 닫힌 세계를 여는 힘이고 '풀'에서 '바람'은 '비'를 몰아오는 존재이고, 바람이 몰고 온 비가 풀의 울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다. 리듬감과 질서가 느껴지는 시이다.)

김수영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고 18일 후에 사망을 하여 '풀'이 대표작이면서 유작이 된다. 김수영 시인과 동시대에 산 박인환 시인도 '세월이 가면'이 유작이면서 대표작이 되는데, 누군가의 예술적 정점은 죽음의 징후와 함께 오는지 모른다. 

<기도>ㅡ 4.19 순국학도 위령제에 붙이는 노래(부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여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마지막 혁명을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

('나'에서 '우리'로(4.19 혁명과 민중의 힘). 김수영 시인을 4.19 혁명의 '참여파'시인으로 보기에는 그의 창작수법은 너무도 흡사하게 '예술파 시인'과 같은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 그는 다른 참여파 시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참신한 표현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에는 예술파 시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참여정신'이 농후한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어떤 시는 '예술파', 다른 어떤 시는 '참여파'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면서 그의 시론은 분명히 '참여파'를 옹호하고 있다.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우지 못하는 분노와 경멸 등 여러 문제를 자신의 내부, 즉 시의 세계로 끌어들여 싸우고자 하는 시인 후기시의 특징이다.)

마치며: 사랑의 힘

김수영 시인은  일체의 정립된 언어와 고정된 언어를 부정직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의 언어는 관습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의 언어'이며, 대물림한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다. 시인은 초기에 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였으나 점차 그 한계를 벗어나려 하였고, 4.19 혁명을 고비로 강렬한 현실의식을 추구하였다. 주로 자유가 억압된 현실을 다루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온몸의 시학'을 주창하였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은 머리로, 심장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수영 시인은 35살 때의 일기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봉사'라고 하였다. 4.19 혁명이 좌절되고 냉혹한 군부독재 치하에서 김수영 시인은 '사랑을 인간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힘'으로 재인식한다. '사랑의 변주곡' 첫머리에서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에서 '사랑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뭐든 아름답다'라고 시인은 강력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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