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의 신념
발명왕 에디슨은 소학교 1학년 때,
선생님 말씀에 말대꾸를 한다고 하여, 많은 고초를 겪다 끝내 자퇴를 하고 말았다.
이유는 1+1=2를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1이 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선생님이 에디슨에게 어머니를 모셔 오라고 하고는, 흥분한 어조로
'당신 아들은 석두이니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습니다. 데려가십시오.'라고 하였다.
'아니 얘가 똑똑한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어머니가 반문을 했다.
선생님이 에디슨을 불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1+1은 얼마가 되지?'
'예 둘이지만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언제나 이렇게 말을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 교육에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데리고 가십시오'라고 하여 하는 수 없이 데리고 나왔다.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엄마 1+1= 1이 되는 것을 보여 줄까?' 하고는,
진흙을 이겨 양손에 가져와서, '엄마, 잘 봐야 돼, 자 합치니 하나가 되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1+1=2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때로는 1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틀림이 없는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에디슨은 어릴 때부터 1+1이 2지만 때로는 1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 전기가 합하면 하나의 전등이 켜지는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소나무의 외침> e길. 산문시
뒷 산 산책로에 수십 년 된 우람한 장송이 무심한 듯 서있다.
날아오는 잡새 두 손 벌려 안아 주기도 하고, 지나는 바람 잔뜩 긴장하며 경계하기도 한다.
탐 많은 부푼 가지 가차 없이 나무라며, 비우라고 비워야 가볍다고 외친다.
지난겨울!
얼마나 혹독 했으랴.
날아다니는 기름진 음식 닥치는 대로 먹고 뚱뚱해져 비우지 않다가,
작은 아기 바람에도 뚝뚝 부러져 사라진 가지 식구 얼마이던가.
두꺼운 껍질로 한 조각 한 조각 열정으로 새긴 몸통.
밖에서 열심히 전체 지탱하는 도마뱀 같은 굵은 뿌리 전사, '네 들이 무너지면 우린 끝이다.'
무서운 등산화 지근지근 밟히고 있지만, 자존심만은 밟히지 않고 꿋꿋하다.
팔 구부려 턱 괴고 잠시 쉬는가 하더니, 벌떡 일어나 두 팔 들고 교통 수신호 정리한다.
윗 가지 올라 가. 조금 더.
밑에 휜 가지 비껴 올라서고...
쯧쯧 서두르지 마라. 차분하게.
그러나 멈추지는 마라.
할 수 있다는 좋은 생각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자.
좋은 생각이 신념을 만들고, 신념으로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행위가 없는 신념은 죽은 신념이다.
우리는 그 신념으로,
서 있지만 움직이고, 움직이지만 서 있다.
푸르게 푸르게!
(감상: 아무리 맛있다고 다 먹으면 탈이 나는 법, 욕심을 비워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멈추지 않는, 서있지만 움직이는 신념을 갖자.)
마치며
바른 신념을 갖아야 한다.
너무 절약하면 짠 소금이 되고,
너무 용기 있으면 웃통을 벗어 과시하게 되고,
너무 신중하면 비겁해져 먼저 도망가게 된다.
'신념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자기의 신념을 발표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비로소 신념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A토스카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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