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모르는 사람
조선 세조 때 이조판서 이승소는 판서 벼슬에 있으면서도 겨우 초가삼간에 살았다.
임금이 불러 공사를 의논하는 자리에 당시 병조판서이던 이모가 입궐하였다.
병조판서는 이조판서와 앞뒷집에 사는 친했던 사이였다.
그런데도 이조판서 이승소는 병조판서를 보고도 모른 체했다.
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조판서는 병조판서를 모르는가?'라고 물었다.
이때의 이조판서 이승소의 대답은 유명하다.
'알지만 모릅니다.'
조정에 판서라고는 6명이니 모를 리가 없다. 왜 모른다고 했을까?
병조판서가 어느 날 누각같이 큰 호화주택을 짓는지라,
이조판서인 이승소가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주택사치를 한다는 건 그만큼 벼슬을 모독하고 백성의 원성을 일으키니 삼가라고 충고를 했다.
그런데 병조판서는 선비로서의 정신적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지 이 충고를 묵살하고 그 집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후부터 이승소는 병조판서가 같이 할 선비가 못되며, 소인배로 간주하고 알고도 모른 체한 것이다.
이 사연을 알고 난 세조는 '알면서도 모른다'는 말을 씀으로, 선비정신에 어긋난 행위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인향(人香> e길. 시
진솔한
인연을 맺고
정을 나누다 보면
꽃보다 더 진한 인향이 퍼진다
꽉 틘 가슴
품격의 시공간을
맨발로 걸어 나와
아낌없이 피어나는 사람다운 향
가는 말
빗질을 하고
기름을 바르면
소리 없이 백리를 가는 향
꽃은 바람으로 피지만
우리는
향기라는 저울로
내 이름의 인향을 피운다
때로는
끊임없이 받아도
베풀 줄 모르는
소인배도 있지만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탐욕 많은
졸장부도 있지만
넓은
대인배의 인향은
꽃 향기를 훨씬 더 지나
만리를 진동한다.
(감상: 옛말에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인향만리人香萬里). 꽃은 제 아무리 예쁘다고 뽐내도 그 향기는 꽃이 지면 사라진다. 사람은 볼품은 없어도 스스로를 낮추고 묵묵히 인격을 갖추면 아름다운 덕이 쌓인다. 그런 덕이 향기가 되어 만리를 퍼져 나갈 것이다.)
마치며
남을 처음 만날 때, 첫인상이 밝아야 좋은 평을 받는다.
단정한 용모와 올바른 태도는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겠지만, 풍겨 나오는 사람의 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는 과정에서 이미 배어있을 것이다.
평소에 남을 대할 때 한마디 말에도 정성으로 다해야 한다.
말이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품성이 완성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서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느낄 수 있다.
말 한마디가 나의 인격이고 품위이며, 상대방에 대한 나의 배려이다.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베풂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인품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