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 분 전(going to the dogs)
'개판 오 분 전이구나. 뱃가죽에 화약 냄새가 나게 해 줘야 쓰겠어?'
1978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에 나오는 대목이다.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은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를 이르는 비속어로, 가끔씩 쓰이는 말이다.
'개판 오 분 전'은 강아지, 개들이 장난을 쳐서 엉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작된 어원을 보면은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질서 없이 수선스럽다는 말은 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의 일시적 무질서에서 나온 말이다.
'개'들의 항변 '우린 억울하다'
6.25 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낙동강 이남의 부산에 몰렸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의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피난민들의 집결소가 있었다.
집결소 옆에는 '무료 급식소'가 있었는데, 피난민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다.
급식소에서는 밥솥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開版) 5분 전'이라고 외쳐서 '배식' 받을 준비를 하도록 했다. '밥 솥뚜껑을 연다'는 열 개(開)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빨리 배식을 받으려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일시적인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때부터 '개판 오 분 전'은 무질서의 상징이 되었고, 확대해서 '개'들이 난장판을 치는 무질서를 상상하여 '개판이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은 개판이다> 서재남. 長詩 (부분)
이런 말 하긴 좀 뭣하지만,
솔직히 우리 집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세상에 개판 개판 해도 이런 놈의 개판은 없을 게다.
다른 말이 아니라 이 놈의 집구석에선 사람이 아닌
개새끼가 버젓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코만 뾰족한 것이
그야말로 이상스럽게 생겨먹은
서양 잡종 개새끼 한 마리가
머리털 더풀더풀해 가지고 어기적거리며 기어들어 오길래
이게 장차 큰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는
좀 키워서 장에다 내다 팔면 쓰것다 싶어서
거둬 멕이기 시작한 것인데.
아, 근데 이 놈의 개새끼는 어찌 되어먹은 놈의 개새끼가
어느 왕실에서 크다 왔는지 어쩐지 입은 가져 가지고
우리 집엣 개들 모냥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아구아구 먹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상에,
사람도 못 먹는 고깃국이나 밝히고 그러니
이, 사람 미칠 일이 아닌가.
이 놈의 개새끼 한 마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 똥개 열 마리의 몫어치보다 훨씬 많더란 이 말이다.
아무튼지 이 놈이 들어온 날부터 조용하기만 하던 집이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이 녀석 때문에 이때까지 속 썩은 일을 생각하면
당장에 잡아 버리든지 장에 갖다 팔아버리든지
해도 시원찮을 일이지만 마음이 모질지 못해 그리 못했다.
헌데, 그 알다가도 모를 일은 우리 식구들이
이제는 다들 이 개새끼의 존재에 대해서
무덤덤해져서 그러는지 어쩌는지
이 개 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은 침대 쓰고 살아도
별반 싫은 정들을 안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안방 아랫목 차지하고 배 처억 깔고 엎으러져 있어도
당연한 것처럼
'저리 가, 이 놈의 개새끼!' 하고
발길질 내치는 사람이 하나 없으니.......
아예 식구같이, 아니 식구 아니라 상전 모시듯
오냐오냐 대접을 해 주고 있는 데에야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오래도록 같이 살다 보니 정이 들어서 그럴까?
허허 이런 젠장을 헐,
그놈의 정!
이 건 들어올 때부터 서 제 놈이 무슨 점령군이라도
된 것 모냥
모가지 뻣뻣이 쳐들고 건방지기가 한량이 없었다.
(중략)
이 것이 날 궂은날 진창길 쏘댕 기다가
흙 묻은 발로 들어와 마루며 광이며
온 집구석 들쑤시고 다니는 건 예사고
함부로 물어뜯고 내 다 버리고 해서 살림 세간
하나가 성한 것이 없다.
심심하면 엎어져 잠이나 잘 일이지 왜 할 일 없이
마루 밑의 신발들은 밭에 물어다가
구뎅이 파고 묻어를 놓는지.
그러니 하다 못해 신발 하나라도 짝 맞는 게 없다.
더 말해 뭐 하겠는가
이것이 지키라는 도둑은 안 지키고
틈만 나면 낮이고 밤이고 편갈라서 개싸움이나 벌리니
동네가 온통 개소리로 진동을 한다.
또 이놈의 새끼는 사람들 잠자려고 누워있으면
뭣 할라고 뒷산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서
미쳤다고 달을 보고 짓는 것일까.
(중략)
저 옆의 옆 동네까지 돌아다니면서
죄 없는 남의 닭이나 물어 죽이고
남의 집 애기 오줌 싸는 놈 고추는
물고 늘어질 건 뭔가.
그래 시방 그 집 귀한 아들 고추 값
안, 물어주게 생겼는가 말이다.
(중략)
근데 사실인지 어쩐지 몰라도 저기 서양에서는
이런 개새끼들이 진짜 개 행세를 한다던데.
비단 보료 위에서 귀족처럼 떠받들리며
왼갖 호사 다 누림서 산다더라고?
버르짓도 바르든가 브리짓드 바르 뭣인가.
그 여자 말마따나 그쪽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긴커녕
개새끼를 제 조상보다 더 위한대.
믿어지진 않지만 들리는 말로는 기르던 개새끼가 죽으면
성대하게 장례식까지 치러 준다고도 하고.
에이그 그러니 개새끼가 사람 위에서
상전 노릇을 할 밖에 없지.
그놈의 동네는 얼마나 더 개판일까.
아이고, 걱정스럽네.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감상: 옛날 나이 드신 시골 노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솔직한 자기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 외딴집에 어느 날 같이 살게 된 서양개를, 화자는 온갖 전횡을 하는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하며 미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며
지금처럼 '줄 서기'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예전에는,
교통수단도 좌석예약제가 안되어 있어서, '개찰 5분 전'이 무질서로 혼란스러웠다.
지금이야 국민 의식 수준이 높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질서'하면 우리나라지만,
배고픈 시절의 '개판 오 분 전'은 우리 민족의 '뼈아픈 쓰라린 추억'이다.
지금은 약간의 무질서를 보고 누군가 '개판 오 분 전이네'라고 말하면,
모두 미소를 짓는 비속어로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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