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정호승. 시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감상: 매미는 탈피(脫皮)를 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간다. 그 탈피된 허물이 붙어있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것은 날아간 어린 매미를 위한 모성이기 때문이다. 허물이 없으면 어린 매미도 없고 노래도 사라질 수 있다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모성을 말하고 있다.
어머니가 불편한 다리로 마루를 닦는 것은, 아들의 잘못된 허물을 닦고, 어머니의 허물을 벗어나 좋은 길을 가도록 닦고 있는 것이리라.)
허물없는 사람이 없다.
허물은 한 사람의 단점이거나 잘못을 저질러서 가지게 된 얼룩을 말한다. 또 다른 의미는 '허물을 벗는다'는 말로 껍질 또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큰 세계로 나간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실수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싸주고 잊어버리는 고맙고 넓은 사랑이다.
뱀은, 목숨 걸고 자기 허물을 벗는다
우리는 나의 허물을 벗으려고 노력하는가.
일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는, 뱀의 허물을 벗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표현된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중략)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소설 '화차'본문 중에서)
덮어야 산다
겨울철 보리밭도 흙으로 덮어 줘야 보리가 잘 자라며, 인삼밭은 울타리와 덮개를 씌워줘야 품질 좋은 인삼이 된다. 감귤밭도 돌이나 사철나무 울타리가 있어야 바람을 피하고 잘 익는다.
사람도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고 보호해 줄 때 좋은 큰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예전에,
미국인들은 'I am ok, you are ok.'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살자'로 서로 협력하여 세계 최강 강대국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나는 죽어도 너는 살라'로 세계 어디나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서로 단결하여 경제력을 키웠다.
유대인들은 '너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한다'라며 서로 경쟁하여 세계 경제권을 잡았다.
한국인들은 '너 죽고 나 죽자'로 민족끼리 싸우고 모함하다가 다른 나라에 침략당하고 망했다. 조선 왕조도 권력 투쟁과 당파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멸망하지 않았는가.
마치며
지금도 우리는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어 싸우고 있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허물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허물없이 모두 깨끗할 수는 없다
물론 '도덕성'과 '죄'는 허물의 범주를 벗어나지만.
부부가 싸움을 하더라도 서로의 약점이나 허물을 덮어 주면,
신뢰와 애정이 쌓여서 가정의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다.
남편의 성격을 바꾸겠다고 남편의 허물을 들추고 무시하면, 가정의 행복은 깨지고 진짜 남편이 바뀔 수 있다.
옛날 술 취한 난봉꾼이 남의 치마 들추려 하듯이,
남의 약점을 들춰 벗기려 하지 말고,
나의 잘못된 '허물'이나 '죽어라 목숨 걸고' 벗자.
'다리가 곧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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