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가슴'이 먼저

e길 2023. 10. 20. 00:01
반응형

말과 행동에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몸에 생긴 상처는 치료받으면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가까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같이 있을 것 같아도, 어느 날 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내 곁을 떠나게 된다.

곁에 가까이 있을 때, 아껴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사랑하자.

입으로, 머리 말고 가슴으로.

 

가슴으로(Freepik)

 

<가슴이 먼저> 고증식. 시

 

딸아이와 한바탕 하고 가방 싸서 집 나간 엄마

그래 나 없이 어디 잘살아 봐라

되는 대로 몇 자 적어 놓고

참말이지 삼대 구 년 만에

훌쩍 친정집 기차 탄 엄마

나쁜 가시나

돈 쳐들여 키워놨더니

따박따박 따지고 들기나 하고

사과 안 하면 내 절대 오나 봐라

딸도 엄마도 며칠째 신경전인데

가시나야, 그게 아니란다

니들은 머리로 엄말 대하지만

엄만 가슴이 먼저란다

늘 그게 먼저란다

 

(감상: 엄마와 딸은 친하면서도 서로의 생각 차이로 다투기도 하는 것 같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문화적인 차이가 생겨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딸의 생각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윽박지르기보다는 하나씩 설득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자식을 이길 수 없지 않은가.

 '엄마는 가슴으로 대한다'는 말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게 하는 것 같다.)

 

가슴으로 읽는 글

 

<손이 커진 이유> 안요한. 성당 게시판 글.

막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한 초라한 행색의 남자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식사 안됩니다'라고 말하려 했었지요.

그러나 어쩐지 그들에게는 밥을 차려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뭘 드릴까요?"

그 여자는 평소보다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담배에 찌들었음직한 초라한 아버지가 주문을 합니다.

"여기 돼지불고기 백반 일 인분 줘 봐요."

그 여자는 한밤중에 와서 1인분의 식사를 주문하는 그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봅니다.

아마도 그 1인분의 식사에 담기는 뜻은 뭉클한 것 같았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눈치만 늘었다고 그 여자는 웃으면서 식사 준비를 합니다.

반찬을 담고 식사를 준비하는 손이 커지는 걸 보니 저 두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하늘이 푸짐한 상을 주라고 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그 여자는 두 사람의 손님이 모르게 웃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은데도 두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내가면서 오히려 그 여자가 더 많이 묻고 웃고 떠들었습니다.

초라한 차림새의 아버지는 연신 반찬이며 고기를 아들 앞에 밀어주었습니다.

"애비가 처음 밖에서 사 주는 거지? 많이 먹어라."

고기가 구워지자 아들은 아버지께 같이 드시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애비는 금방 먹고 왔어' 하면서 자꾸자꾸 반찬이 떨어져 쏟아질 만큼,

아들에게로 가까이 밀어줬습니다.

 

아마도 아들은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서 자취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푸짐한 상조차도 오랜만에 대하는 것처럼, 아들은 그 여자가 차려 준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워낙 양을 많이 차렸던 상 이어서 음식이 조금 남았습니다.

고기도 남긴 채로 아들이 숟가락을 놓자 아버지는 연신 더 먹으라고 권했지요.

아들은 정말 배가 불러서 더 못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밥 한 그릇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아들이 남긴 고기 위에 밥 한 그릇을 다 엎어서는 썩썩 비벼서 그 밥을 다 먹었습니다.

가난한 그 아버지의 식사.... 먹고 왔다고 그렇게 손을 홰홰 내젓다가,

아들이 남긴 반찬에 밥 한 그릇을 엎어서 고픈 배를 채우는 아버지의 식사를 바라보던,

아들의 눈에서는 기어이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 여자가 음식을 차리는 손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감상: 부모의 자식 사랑이 바로 눈앞에서 보듯 느껴지는 글이다. 이 시대 현대의 아버지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베푸는 주인장의 마음도 너무 아름답다. 먹고 싶어도 자식입에 조금이라도 더 넣어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우리는 자식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참고문헌: 고증식 시집 '얼떨결에'/ 왜관 성당 자유게시판, 안요한/ 네이버)

반응형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리언 린  (159) 2023.10.23
사랑의 힘  (151) 2023.10.21
의리와 믿음  (123) 2023.10.19
'툭' 가을  (129) 2023.10.18
포용  (138) 202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