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물에 비친 자화상(詩)

e길 2023. 10.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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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성찰'의 우물

인류가 정착지를 잡을 때 제일 중요한 안 착지로 '물, '을 시발점으로 생각한다. 

물은 인간의 근본이며, 그래서인지 문학 작품 속에서는 자신을 뒤돌아 볼 때 '우물'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흐르는 물은 흐르는 모습만이 보이며, 고요한 물이라야 고요한 얼굴이 비추인다.'(도종환 '고요한 물') 그래서 작품에서는 우물이 자기 성찰의 단골 메뉴다.

 

좋은 우물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우물에 김이 무럭무럭 난다. 또한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냉수처럼 시원하다. 신경만 써주면 우물은 항상 살아있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비춰 작가들은 우물을 아주 좋아한다.

 

물에 비친 나무

 

<샘물> 김달진. 시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地球)의 우에 있다

 

(감상: 숲 속에서 작은 샘을 만났다. 샘물 속에서 하늘괴 흰구름을 만나고 바람이 불어와 잔물결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샘에 우주가 들어있다. 지구가 광활한 바다 섬 위에 떠있다.

김달진(1907~ 1989) 경남 창원 출생. 동아일보 기자와 선린상고 교사로 재직. '청폐', '장자' 등의 작품이 있다.)

 

 

자기 성찰과 변증법적 갈등

 

<자화상> 윤동주. 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감상: 우물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현재의 모습에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깨닫는다. 그래서 반성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미웠던 자신이 가엾어지고, 또 미워지고 그리고 그리워진다. 일제 강점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가엾다 하고,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부정적이라 해도 무언가를 못한 자신이 미워지고, 예전에 잘했던 그 모습을 그리워한다.)

 

마치며

사람은 살면서 평생 동안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거울 속의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반사되어 보여주는 것 또한 같기에 한 몸이며, 우물 또한 자신의 자화상이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마라'라고 '리어왕'에서 말하였다.

 

다 보여주는 우물은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지만, 인간관계에서 자기 자신은 다 드러내지 말라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달진 시전집/ 윤동주 시집/ 도종환 '고요한 물'/ 위키백과/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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