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눈물의 어머니', 김만중 사친시(詩)

e길 2023. 9.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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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구운몽'과 눈물로 쓴 '사친시(思親詩)'

 

조선왕조 숙종 때의 홍문관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문학가요, 정치가인 김만중(1637~ 1692)의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소설‘사씨남정기’와 ‘구운몽’ 그리고 그의 어머니 일대기인 ‘윤 씨 행장기’ 등의 저자이다. 
시호란 죽은 후에 생전의 행적을 보고 지어주는 이름이다. 

'문'은 그의 문학적 행적이 훌륭한 작가였고,
'효'는 생전의 어머니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도했으므로 그렇게 지어준 것이었다.

 

구운몽 (교보문고)


김만중의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적장의 손에 잡혀 죽느니 차라리 자결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부인 윤 씨는 같이 자결하지 못하고 피난을 갔으며 피난 가던 중 배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바로 김만중이었다. 어머니 윤 씨는 난 중에 아이를 낳았고 아버지 없이 두 아들을 홀로 키웠으며, 두 아들을 입신양명시키기 위해 교육에 힘을 썼다고 한다. 어머니의 교육 덕분에 김만중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 되었다.

 

김만중은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 동부승지 등의 벼슬길에 올랐지만 당파싸움에 휩쓸려 귀양살이를 한다.

당시 형 김만기(숙종의 장인. 숙종의 첫째 왕후 '인경왕후 김 씨'가 형 김만기의 딸이다)와 '서인'파인 김만중은 장희빈의 세력('남인'파)에 반발하다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당시 김만중의 나이 51세였다.

 

<사친시(思親詩)> 김만중. 시

 

今朝欲寫思親語(금조욕사사친어)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쓰려고 하니

字未成時涙已滋(자미성시루이자) 글자도 쓰기 전에 눈물이 홍건 하다.

幾度濡㚏還復擲(기도유호환부척) 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도로 던져 버렸던가

集中應缺海南詩(집중응결해남시) 문집에서 남쪽 바다에서 쓴 시는 반드시 빼 버려야 하리.

 

(감상: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비판하다가 남해로 유배당했던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처음 맞는 어머니 생일날 아침에 지은 시다. 생일을 맞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앉았지만, 글을 적기도 전에 눈물이 흘러내려 편지를 쓰지 못했다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석 달 전 생신날에 서포 김만중 선생의 마지막 어머니에 대한 이별의 시이기도 하다.)

 

 

김만중의 어머니 윤 씨는 이조참판 '윤지'의 무남독녀로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내고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래서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접할 기회가 많아 학식이 풍부한 데다 인품이 막힘이 없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만중은 관직에 있을 때 에도 되도록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였는데 다시 만날 날조차 기약할 수 없는 귀양길에 오른다. 그때의 심정을 당시 지은 시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해마다 어머님 생신날이면

형제 마주 서서 색동옷 입고 춤을 추었건만

이제 아우 하나 명을 받들어 어머님 곁을 떠났으니

아! 어찌 어머님 마음이 즐거우시겠는가.'

 

(감상: 이때는 형 만기가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어머니를 홀로 두고 아들 한 명은 죽고, 남은 자신마저 귀양길에 오르는 '김만중'의 심정이 오죽 답답했을까. 귀양을 가면서도 어머니 걱정뿐이었다.)

 

김만중 선생 영정(대전시 문화재 48호)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 '구운몽']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어머니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했다. 말하자면 어머니를 독자로 해서 글을 쓴 것이었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은 그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었다. 어머니를 독자로 했기 때문에 읽기 편하시도록 어려운 한문으로 쓰지 않고 한글로만 썼다. 비록 귀양을 왔지만 '아들의 마음은 평온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효심 가득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구운몽'은 조선 시대 가장 인기를 끌었던 '소설' 중 하나이며,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루마니아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총 8개 국가에 출간되었다. 춘향전 다음으로 해외에서 많이 출판된 한국 고전문학이다.

<구운몽의 줄거리>

 

'선계에서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은 불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8 선녀를 마주친 성진은 8 선녀와 노닥거린다. 그 후로 8 선녀에 대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알게 된 육관 대사는 8 선녀를 희롱하고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죄로 성진을 인간 세계로 떨어지게 한다.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계에서 새로 태어났다. 양소유는 인간 세계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8 선녀를 2명의 부인, 6명의 첩으로 삼았다. 돈, 여자, 명예를 다 얻은 양소유는 어느 날 8명의 부인들과 파티를 하던 중 이렇게 말한다.

'동쪽을 바라보니 진시황의 아방궁이 풀 속에 외롭게 서있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무제의 무릉이 가을 풀 속에 쓸쓸하며, 북쪽을 바라보니 당명황의 화천궁에 빈 달빛뿐이라오. 이 세 임금은 천고의 영웅이어서 해와 달과 별을 돌이켜 천세를 지내고자 하였지만 이제 어디 있는가?'

 

양소유는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그보다 더 큰 부귀영화를 누린 진시황, 한무제, 당명황은 모두 죽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사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그때 육관 대사가 양소유 앞에 나타나 그를 꿈에서 깨게 했다. 결국 양소유는 성진으로 다시 돌아왔고 모든 것은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성진은 인간사 부귀영화가 한낮 헛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 정진하며 살았다.'

[어머니의 타계]

 

어머니를 위한 효도는 멀리 유배지에서도 더 간절한 그리움으로 '구운몽'을 지어냈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자식 김만중이 귀양지에 있을 때 타계하고 말았다.

 

어머니에 일대기 ‘윤 씨 행장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에 의해 써진 것이었다. 그 글을 다 쓰고 나서 맨 끝에 김만중은 못다 한 마음을 이렇게 써 놓았다.

'어머니를 여읜 불초한 만중은 피눈물을 흘리며 삼가 기록 합니다.'

마치며: 유배지에서 어머니 임종 보지 못한 죄책감


'구운몽'은 솔직히 현대소설에 비하면 그리 재밌는 줄거리는 아니지만 성리학이 지배적이던 조선시대에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흥미위주의 오락 소설이라면 왕이나 양반들은 눈치를 보며 쉽게 읽지 못했을 텐데, 인간사에 대한 교훈을 주는 주제도 담고 있어 널리 읽혔던 것 같다.

 

당대 최고의 벼슬 중 하나였던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서포 김만중 선생도 결국 유배를 가서 외롭게 살아갔다.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죄책감과 한을 안고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후 귀양지에서 쓸쓸하게 어머니의 뒤를 따라 세상을 하직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포문집/ 네이버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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