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의상, 윤필의 삼성산 3막(幕)
안양 삼막사(三幕寺) 창건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원효스님과 의상스님, 윤필거사 등 3명의 성인이 암자를 창건하고 3곳의 막(幕)을 짓고 수행 정진했다. 원효스님이 삼막사를, 의상스님이 연주암을, 윤필거사가 염불암을 각각 창건해 수도했으며, 이 세 성인이 수행했다 해서 '삼성산(三聖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이 수도한 도량이다.
다시 만난 원효와 의상
중국의 요동에서 헤어진 원효와 의상 이 두 스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이 삼막사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중국에까지 함께 간 동료와 쉽게 헤어질 수는 없지만, 그것도 중도에서 아무런 기약 없이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원효도 의상도 서로의 견해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갈 길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서로 달리 걸어왔던 길, 그것은 한 가지 길이면서, 또한 한 가지만의 길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또 의기투합을 한다. 같이 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677년 의상이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이듬해에 원효와 의상은 윤필과 함께 이 삼막사에 수행 거처를 만들었다.
어쨌든 세월이 지나 삶의 황혼기에 그들은 함께 수행하게 된다. 원효는 회갑 나이였고 의상도 50이 넘은 세월을 보내, 두 대사는 황혼의 시기를 가고 있었지만, '불심'이라는 한 가지 마음으로 삼막사에서 정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삼막사에 수행하면서 염원한 것은 진정으로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자리 잡았던 이 서해 말미의 산자락이 앞으로 천년 뒤에 한반도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삼막사 터전을 더욱더 잘 닦았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저녁이면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색의 높은 산들과, 망망대해 서해를 바라보면서 이승의 찰나적인 한 순간을 함께 아쉬워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 대한 회상으로 빙그레 마주 보고 웃으며 산을 넘어가는 구름, 아름다운 산새들의 합창을 들으면서 그들이 이다음에 여행하게 될 이승 저편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원효, 의상 두 스님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의상이 중국의 지엄에게 화엄종을 들여와 우리 화엄종을 열었고,
원효 또한 해동불교를 열었다.
의상이 불교의 학문적인 체계를 세웠다면,
원효는 불교를 민중화하는데 절대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래서 의상에게는 따르는 제자와 문도들이 많은 반면,
원효에게는 스승도 또한 따르는 제자도 없었다.
원효에게는 스승도 필요 없었고, 제자도 필요 없었으며, 그의 스승과 제자는 일반 민중들이었다.
의상이 다분히 귀족적인 견지에서 호국 신앙의 불교를 받아들였다면,
원효는 너무나도 서민적이었으며, 민중과 함께 하는 불교를 설파했다.
의상은 진골 출신이었고, 화엄종의 시조였다.
원효는 변방의 시골출신이었지만 많은 저술을 남겨, 일본과 중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효는 일심사상으로, 아미타부처님(사후 극락세계)만 믿으면 성불한다는 정토사상이고,
의상은 화엄사상으로, 관음보살(현생의 소원 들어주어 극락세계 인도) 하는 관음사상이다.
이 두사상이 합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이 나왔다고 한다.
마치며: 20년 넘게 국수 공양
장구한 역사, 격변의 세월이 지난 삼막사, 그 시대에 이곳을 수행의 도량으로 선정한 원효와 의상, 그리고 윤필 스님, 지공 화상과 나옹 대사, 무학대사, 도선 국사와 서산과 사명 대사 등이 수행했다.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산정 밑으로 하늘로 하늘로 뻗어있는 무언의 수목, 어쩌면 이런 곳에 수행터를 마련할 생각을 하였는지, 꼬불꼬불 한 구비를 돌아가면 또 한 구비, 십오 리 산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올라보면 신기하게도 서울과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삼막사(三幕寺)를 외세와 싸우며 우리 선조들은 천년이상 보존해 온 것이다.
삼막사는 원효스님이 창건한 이후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도도량이며, 지금은 삼성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위해 일요일마다 국수를 제공하고 있다. 등산객들을 위한 국수 공양은 20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매주 평균 800명에서 1000명이 삼막사에서 보시하는 국수를 맛보고 있다.
(참고문헌: 송고승전(의상전기)/ 삼국유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청/ 중앙일보/ 위키백과/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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