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원효대사 해골 물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e길 2023. 9.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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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원효대사는 불교 대증화에 앞장섰던 분으로,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이자 시인이다. 

어머니가 원효를 낳은 후 7일 만에 돌아가시고, 12살 때 아버지는 고구려와 전쟁에서 전사를 한다. 그 해에 화랑이 되었으며, 16살에(선덕여왕 1년) 무술대회에서 장원을 할 정도로 무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조부마저 작고하자, 삶과 죽음의 고민으로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다.

 

원효가 출가한 경주 황룡사 9층 목탑(디지털 복원. 문화재청)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는,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정복을 준비할 때였다.

선진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젊은 원효와, 8살 아래인 의상은 낙양으로 가는 중이었다.

 

무덤 속의 하룻밤

유학길에 오른 어느 날, 요동지방에서였다.
두 사람은 낮에는 민가에서 밥을 얻어먹고 밤이면 추위를 피해 무덤 속에서 잤다. 그 지방의 무덤은 돌집으로 방을 만들고 그 속에 시체를 넣어서 관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또한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어김없이 추위를 피해 묘지를 찾아들어가는 것이었다.
밤에 무덤 속에 자노라면 귀신의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꿈자리도 사나웠다.

오래된 무덤이면 그나마도 편안했으나 새 무덤이면 말할 수 없이 무서웠다.
양자강 벌판에는 산 없는 곳이 많아서 어떤 도읍에는 외딴곳에 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 관을 수없이 갖다 놓는데, 그게 바로 공동묘지였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 공동묘지에서 비롯된다.

 

원효와 의상은 비를 피하기 위해 이 공동묘지에 몸을 숨겼다. 거기에는 새로 들어온 관이 있고, 새 지전이 널려 있었다. 방금 켠 것 같은 등이며 관 앞의 음식 또한 차려놓은 그대로였다. 지방을 보니 여자의 주검이었다.
원효와 의상은 관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송장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아니었다. 극도로 시장하던 터에 음식을 먹고 나니 물이 먹고 싶었으나 물이 없었다. 원효는 표주박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부슬부슬 비는 계속 내리는데 바깥은 한 치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천지였다.
이곳저곳을 헤맨 끝에 원효는 가까스로 물이 괸 웅덩이를 찾아 한 바가지를 떠먹고 한 바가지는 무덤 안으로 가지고 왔다. 당연히 의상이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잠에 곯아떨어진 원효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 웬 여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먹을 음식을 왜 먹었어? 빨리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내가 우리 집에 데리고 갈 거야!"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는 그 여자의 손을 뿌리치다가 원효는 그만 잠을 깨고 말았다. 온몸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은 원효는 죽은 여자의 관 앞에서 반야심경을 읽어 주고 그 혼이 좋은 데로 가도록 빌었다.


원효는 그제야 어젯밤에 마신 물웅덩이가 생각났다. 목이 마르고 세수도 할 겸 그 물웅덩이를 찾았다.
그러나 원효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웅덩이에는 사람의 해골이 있었던 것이다. 긴 이빨이 그대로 남아 있는 두골이며 손발, 원효는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오장육부가 요동질을 쳤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원효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는 재빨리 엎드려서 그 웅덩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마음이 생기면 우주 만물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 다르지 않은 법이구나.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고... 그분이 어찌 틀린 말씀을 하셨겠는가!"
원효는 깨우침을 얻어 낙양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신라로 되돌아오고 말았으며, 의상은 원효의 뜻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물론 의상은 혼자 낙양으로 갔다.

 

원효대사(중앙일보)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원효대사.

 

지혜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밥을 먹어

배고픈 창자를 위로할 줄 알면서도

 

진리의 불법(佛法)을 배워서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모르네.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날아가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

 

(감상: 모래로 밥 짓는 삶에서, 쌀로 밥 짓는 삶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추어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롭게 되는 세상을 만들자. 원효대사는 깨달음을 얻고, 설파하기 위해 시장통 하층 민중의 삶으로 들어갔다.)

 

마치며: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원효대사(617년~ 686년)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 출신이며, 자신이 살던 집을 희사해 초계사(初啓寺)를 세우고,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밤나무골 불땅고개 옆에 '사라사(紗羅寺)라는 절을 지어 어머니의 혼을 위로하고, 입산수도의 길을 떠났다.

 

원효대사는 한국 불교계의 고승으로 신라십성(新羅十聖) 중 한 명이다. '모든 건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로 깨달음을 얻었으며, 파계승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는 물론 한국 고대사, 철학사,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인물이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고, 이때부터 '소성거사'라 칭하며 서민 속으로 들어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설총은 신라시대 손꼽히는 유학자였다.

 동두천시 소재 소요산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연이 담긴 현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소요산 봉우리에는 의상대가 있으니, 원효와 의상은 경기도에서도 많은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원효대사를 기념하는 서울의 '원효로'가 1946년부터 명명되었다.

 

 

[중국으로 가다가 헤어진 원효와 의상은 삼성산 '삼막사'에서 다시 만나는데,  '삼막사' 편에서 이어진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고승전(의상전기)/ 삼국유사/ 문화재청/ 중앙일보/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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