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 뜨거운 날에 더위를 날릴 차디찬 겨울시를 감상해 본다.
추운 겨울이 오면 또 얼마나 추울까 '부들부들', 생각만 해도 춥다.
이 계절의 시간은 조금 있으면 쌩쌩 바람 부는 추운 겨울이 된다.
나는 누구를 '이롭게' 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추운 겨울날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것들을 보호하고, 감싸주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우리는 덥다, 춥다 본인만을 위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묵묵히 이타적인 타인을 위하는 멋진 것들이 있는 것이다. 시를 통하여 더위를 식히고, 춥지만 따뜻한 겨울을 음미해 본다.
<결빙의 아버지> 이수익. 시
어머니,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를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을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감상: 한강을 전철로 지나면서 물의 결빙을, 그 얼음을 보면서 항상 이 시가 생각이 나곤 한다. 한 겨울 혹한에 얼음이 되어서라도 자식 같은 밑의 물을 감싸 안고 넙적 엎드려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어머니에게 고백하듯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어릴 적 춥고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다. 한강을 보면서 추운 날씨에 여린 물살이 잘 흘러가도록 단단히 얼어붙은 납작 엎드린 얼음을, 아버지의 잔등으로 동일시하며 안타깝게 그리워하고 있다.)
이수익 작가는 1942년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했다. 방송국 프로듀스, 국장 등 일을 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우울한 샹송', '고별', '아득한 봄', '그리고 너를 위하여', '방울소리' 등 많은 작품들이 있다.
<겨울강> 정호승. 시
꽝꽝 언 겨울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트린 울음인 것을
(감상: 겨울강의 쩡쩡 우는 울음소리를 들어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꼭 썰매가 아니더라도 얼음으로 덮인 강 위에서 걸어가면 쩡쩡 소리가 난다. 시인은 '쩡쩡' 소리를 어린 빙어들을 불쌍히 여긴 강의 울음소리로, 별도 따라서 같이 운다고 하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시문으로 나타내는 평소 시인의 색깔이 묻어나 있는 시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 하동군 출생이지만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동 대학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봄길', '비상', '부치지 않은 편지', '허물', '겨울강에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등 수많은 명작이 있다.
<눈> 윤동주. 시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감상: 추운 겨울에 당연히 내리는 눈을, '겨울에만 내려 따뜻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겨울 차가운 눈이 따뜻한 이불이 되는 것이다. 겉은 아무리 차고 냉랭한 것도, 속은 따뜻함을 품고 있다는 것과, 뭔가 부족한 것에는 따뜻하게 서로 정을 나누자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있는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문인이다. 김소월, 한용운 작가들과 함께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시인이다.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유명한 '서시', 와 '자화상', '별 헤는 밤', 등 수많은 명시 작품집이 있다.
<겨울강> 박남철. 시
겨울강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이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아,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아,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흐를 것들이
쩡, 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감상: 얼어붙은 겨울 강에 단단한 돌을 던진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강물은 쩡쩡하고 소리만 낼뿐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언젠가는 녹아 없어질 것들아'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것이라고 어떤 대상을 원망하며 울면서 돌을 던져 보지만 현실은 쩡, 쩡쩡이다. 얼어붙은 강물을 뚫고 내가 던진 돌이 바닥에 닿아야 하는데. 봄이 되어 강물이 녹아 내가 던진 돌이 바닥에 닿는다 해도 얼어붙은 강은 이미 녹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박남철 시인은 1953년 경북 영일 출신으로 경희대, 동 대학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강원대 교수를 역임했다. 시인은 이성복, 황지우와 더불어 '해체 시'의 선두 주자로 불렸다. '지상의 인간', '반시대적 고찰', '생명의 노래', '자본에 살어리랏다', '바닷속의 흰머리뫼' 등 많은 작품이 있다.
마치며: 누구를 '이롭게' 해 본 적이 있는가
겨울은 모든 것을 멈춰 세운 계절 같지만, 차가운 눈은 대지를 감싸며 땅 밑 새로운 생명들의 잉태와 발아를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땅에 내린 눈이 쌓여 얼어도 눈은 따스하게 자연의 대지로 스며들어 나름의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얼음이 납작 엎드려 여린 강물을 잘 흐르게 덮고 있듯이.
뜨거운 여름날 생각해 보는 차디찬 겨울의 시를 음미해 보면서, 지금 생각해 보는 겨울은 고맙고 낭만적이다.
춥다고 미끄럽다고 걷어 차는 겨울의 '따뜻한 눈' 만큼, 우리는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또, 겨울이 오면
추위는 싫다며, 따뜻한 여름을 그리워하면서 차디찬 얼어붙은 겨울 강에 돌팔매질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참고문헌: 나무위키/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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