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낙화'는,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 안의 촛불을 끄고, 가야 할 때 떠나라'는 의미
찬란한 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 전에 화려하게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혀주던 연분홍 꽃들은 어느새 지고 말았다. 꽃이 아름다운 건 잠깐 피었다가 어느새 지기 때문이다. 녹음이 푸르르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지고, 마른 가지 홀로 외롭게 떨고 있는 겨울은 금세 오는 것이다.
시인들은 꽃을 청춘으로 비유한다. 꽃이 떨어질 때 청춘은 꽃답게 죽고, 꽃잎이 질 때 청춘은 다한 것이다. 꽃이 때가 되어 피고 지듯이 청춘도 그러하다. 청춘을 청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세 시인의 '낙화'란 시로 '떨어지는 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낙화, 첫사랑> 김선우. 시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감상: 이별을 통한 정신적 성숙을 표현한 작품이다. '낙화'와 '첫사랑'의 공통점은 이별이다. 1은 나와 그대는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는데, '나'는 그대를 붙잡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대'를 추억으로 기억하겠다. 그것이 그대를 영원히 소유하는 길이라고 깨닫는다. 2는 꽃으로 표현하며, '나' 꽃은 '그대' 꽃보다 먼저 떨어져 그대가 아닌 '나' 꽃을 받겠다고 한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긍정하지 않으면 '너'를 긍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선우 시인은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날' 등이 있다.
<낙화> 조지훈. 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감상: 꽃은 화려함을 연상시키는 것이어서 꽃이 진다는 것은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꽃은 피면 지고 차면 기울기 마련이라서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꽃을 지게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꿔 버리는 '시간'이다.
'촛불을 꺼야 하리' 방의 촛불을 꺼야 마당의 꽃이 별, 달빛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 빛에 미닫이 문에 희미한 붉은 꽃색이 비친다는 시인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묻혀서 사는 이'는 시골에서 도회지로 나가지 않고 사는데 꽃이 지면은 무슨 낙이 있을까. '울고 싶어라' 표현했지만, 제 할 일 다 하고 떠나는 꽃의 아름다운 청춘의 감상적인 벅찬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우련: 희미하게, 귀촉도: 소쩍새, 저어: 두려워)
조지훈 작가는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며, 그의 저서 '지조론'은 1960년대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표현한 시를 썼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표출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시인은 1920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파초우', '승무', '완화삼', '호상비문', ' 고풍 의상', '마음의 태양', '사모', '멋설', '석문' 등의 많은 저서가 있다.
<낙화> 이형기. 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감상: 역설적이게 떨어지는 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참 아름답다. 자기희생의 '비움'이 있고, '내려놓음'과 그 속에 '사랑함'이 숨어 있기에 그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미련을 떨쳐 버리길 결심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의 용기는 멋지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있으며,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의 순리인 것이다.
자신의 역할에도, 지위에도, 인생에도 때가 있고 놓아야 할 때가 있다, 꽃잎이 지는 계절이 주는 교훈은, 내가 있어야 할 때, 꽃을 피워야 할 때,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 것, 그렇게 꽃도 열매도 인생도 가는 것이다.)
이형기 작가는 1933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했다. 17세에 최연소 등단 기록을 세웠으며, 기자, 편집국장, 논설위원, 동국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표 시로는 '죽지 않는 도시', '낙화'와 시집 '적막강산', '그해 겨울의 눈', '꿈꾸는 한발', '절벽' 등의 많은 작품이 있다.
(마치며: '낙화'의 운명은 자연의 섭리
인간의 만남이 헤어짐을 전제하듯이, 꽃은 '낙화'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 먼저 떨어지는 꽃과 조금 늦게 떨어지는 꽃이 있을 뿐, 결국 모든 꽃은 언젠가는 시들어 떨어지기 마련이다.
김선우 시인은 꽃이 떨어지는 시간차룰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나를 먼저 사랑해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는 것은 세상의 순리라며 '누구'를 원망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 안의 불빛을 줄여야 캄캄한 밤에도 바깥을 볼 수 있으며, 꽃이 할 일 다 하고 지는 순리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한다.
이형기 시인은 떨어지는 꽃은 아름답다면서, 내가 가야 할 때를 알고 묵묵히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임무를 다 끝내고 청춘을 '꽃'답게 죽는다고 외친다.
세 시인은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누구를 원망 말고 내 안의 빛을 줄여 어두움 속 순리를 보고, 내가 가야 할 때에 아름답게 떠나라는 자연의 순리를 말하고 있다. 즉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 안의 촛불을 끄고, 가야 할 때 떠나라'는 자연의 섭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위키백과/ 월간현대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글/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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