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의 파괴, 해체 시인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 시인으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으로 시대를 '풍자'하고 이상향을 꿈꾼다. 시인의 작품들은 회화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들로 아픈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 상황의 억압 때문에 뒤틀린 내면을 낯선 실험적 형식으로 드러내면서, 경직된 인식의 전복과 권위의 파괴 그리고 진정한 가치의 정립을 지향한다.
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서울대 재학 중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 입영했고 서울대 대학원, 서강대, 홍익대 대학원(미학 박사)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총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상황은, 신군부 정권의 등장과 광주 민주화 항쟁, 도시 집중과 이농현상의 심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언론 통폐합과 출판물에 대한 검열 등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시문학은 정권에 저항하느라 '현실이 상상력을 압도'하는 민중문학의 시대, 민중시가 시단을 주도해 나갔으며, 모더니즘 시, 서정시도 꾸준하게 이어 나갔다.
'제가 시인으로서 할례를 받게 된 것은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80년의 문지방을 넘자마자 바닥에 낭자한 그 피바다는 70년대 이래의 민주화운동을 바야흐로 혁명의 수준으로 진전시킨 80년대 변혁운동의 모세 혈관을 충혈시켰던 한편, 80년대를 '시의 시대'라 부를 만큼 시의 불행한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황지우, '끔찍한 모더니티')
낭만주의에서 풍자로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황지우. 시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처넣고 솜으로 막는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의 일부를 파묻는다
나의 증거 인멸을 위해
나의 살아남음을 위해
(감상: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말하지 않겠다. 현실과 거리를 두겠다)
<파란만장> 황지우. 시
율도국에 가고 싶다
내 흉곽의 강안을 깎는
파란만장
물결 하나가
수만 겹의 물결을 데리고 와서
나의 애간장 다 녹이는
조이고 쪼이는
내 몸뚱아리 빨래가 되고
오 빨래처럼
시신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흘러가고 싶다
(감상: '파란만장' 만 길 높이로 뛰는 '파도'가 미쳐 날뛰는구나. 이렇게 괴롭히고, 조이고, 쪼아대는 통에 몸은 축 늘어져 빨래가 되었구나. 그냥 죽어서라도 현실에 없다는 건 알지만 율도국 '유토피아'로 흘러가고 싶다.
현실을 낭만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절망적이다. 시인은 침묵하느냐, 풍자로 현실의 구조 형식을 파괴하고 절망의 극단을 딛고 일어서느냐에서 침묵을 버리고 풍자를 택한다. 아니 차라리 침묵에 대한 풍자이다. 그래서 황지우 시인은 '낭만주의'에서 '풍자'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황지우. 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감상: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황지우 작가의 첫 시집이다. 낭만적에서 풍자로 나가는 분기점이 된 시다. 애국가에서 흰 새떼들이 끼룩 낄낄대면서 자기들의 멋진 세상으로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도 낄낄 깔쭉 대면서 멋진 세상 즉 율도국의 낭만주의적 유토피아로 갔으면 하는데...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유토피아로 갈 수 없구나'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집은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은 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시집이다.)
<그대의 표정 앞에> 황지우. 시 (부분)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 오줌 싸려는 나의 포즈를 가로등이 등뒤에서 길게 내 이마 때려눕혀 논다. 섬뜩 놀라며 멈춘 나는 섬뜩 놀란 체하는, 그런 몸짓을 하는 그놈을 노려본다. 그놈에게 질질 갈기면서, 좌우로 흔들면서, 부르르 떨다가 탈탈 떨면서, 그리고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못 살아 못 살아, 들어가면 아내에게 소리 지를 거다. 여보 우리 꺼지자. 남미로, 남극으로, 우리의 대척지로, 어디든!
현실: 꼼짝 못 함. 체형: 부동자세. 경제: 빚더미. 교육: 무지몽매. 예술: 시원한 거품의 OB 맥주. 아, 삶: 입구멍, 똥구멍, 오줌 구멍만 뚫려있음. 여기저기에 핀 포인팅. 종교: 없음.
불쌍한 지구. 불쌍한 폴란드.
불쌍한 태양계. 불쌍한 20세기말.
그리고 끝으로 불쌍한 이 시공 어디서 눈이 오려는지
호남 산간 내륙으로 불연속 전선이 다가간다.
(감상: 1980년 봄의 비극 앞에서 감옥에 들어가 '불가피한 방관자'가 된 시인은 마음의 부채로 괴로워한다. 술에 취해서 가로등과 맞서며 죄를 지어 놀란척하는 그놈들에게 이리저리 좌우로 질질 오줌을 갈긴다. 겨우 탈탈 털어내고 아내에게 도망을 선언하지만 그녀의 표정 앞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녀 앞에 자연스럽게 부동자세가 되고, 통장은 볼 것 없이 독촉들로 뻔하고, 열린 구멍으로 맥주의 출입만 허용되는 불쌍한 세상살이다. 지구가 불쌍하고 모든 것이 불쌍하다. 호남 산간으로 또 눈보라가 몰아칠 것 같은데 달아날 수도,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래 현실의 해체된 욕망을 시로나마 위안을 삼자. (실제 시집에는 글자를 키웠다 줄였다, 굵었다 가늘게 하는 등 최선의 파괴를 하며 마음의 동요를 나타낸다.)
마치며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바로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되었다.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 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모진 지옥의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의 첫 시집이자 출세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으며, 80년대를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로 외쳤다.
(참고문헌: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위키백과/ 구글/ 나무위키)
(1) 편: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파란만장/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그대의 표정 앞에/ 등
(2) 편: 심인/ 벽 1/ 초로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 추모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 등
(3) 편: 버라이어티 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무등/ 등
(4) 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연혁/ 1983, 말뚝이, 발설/ 삶/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서벌, 셔발, 셔발, 서울, SEOUL/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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