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리리시즘' 시조 시인 "이병기"

e길 2023. 6. 2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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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시즘' 시조 시인, 현대 시조의 아버지. "이병기"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시조 부흥 운동에 앞장섰고, 국문학자로써 국문학, 서지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시조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거기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며, 리리시즘(서정적 정취)을 담으려고 하는 묘사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시인에 의해서 '시조'는 현대시의 한 장르로서 완전히 자리 잡으며 문학작품으로 음미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가람문선

'삼복지인' 가람 이병기 시인

평소 시인은 자신이 술 복, 난초 복, 제자 복을 타고났다고 말하기를 주위에 마다하지 않았다. 운명하는 날까지 반주를 빠뜨리지 않은 시인은 술을 무척 좋아하였다. 또한 유별날 정도로 난초를 좋아하였다. 시인은 1년 동안의 감옥생활을 뺀, 60여 년간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는데, 일기에 적힌 난의 종류만 하여도 다양하다. 건란, 풍세란, 복주한란, 사란, 오란, 관음소심, 신죽소심, 일경구화, 옥우란 등등 수없이 많다. '도림란'은 춘란의 일종인데, 시인의 도움으로 이름을 얻은 란이다. 일제 치하의 '민족의식 고양'이란 죄명을 붙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 만에 풀려나, 말라죽은 난을 보고 극히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런 쓰라린 현실에 시인은 술을 좋아하고 난초, 매화 등의 자연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시인은 '난'향을 가까이하며 일제의 만행과, 세상의 지저분하고 더러움을 씻었다. 사람이 제아무리 깨끗이 살려고 하여도 세상의 더러움을 아니 묻힐 수는 없다. 시인은 날마다 밤마다 난을 닦고 물을 주며 세상을 닦았고 빛나게 광을 냈다. 

'난초' (시조. 이병기) 

난초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올다 선뜻 깨니/ 드는 별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우리 바야흐로 벌어라. (난초의 개화)

난초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꺽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난초의 시련과 고난)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난초의 향기와 애정)

난초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난초의 생명력)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난초와 시인의 교감과 향기)

난초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난초의 청초한 외적 모습)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 (난초의 깨끗한 내적 마음. 깨끗한 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잡된 것을 멀리하고, 비와 이슬만으로 산다)

(감상: '가람 시조집'과 '가람문선'에 1939년 수록된 시다. 난초의 '청아한' 모습과, 맑고 고결한 마음의 난초에 대한 깊은 사랑, 난초의 '외유내강' 굳은 성품을 느끼는 대로 이야기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난초의 외적 모습과, 내적인 곧은 본성을 예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감각적인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의인법으로 시인의 감정을 이입시켜 난초의 고결한 삶을 예찬하였다. 부드럽고 청초한 외양과 깨끗하고 고결한 내적 본성을 찬양한다. 화자는 난초와 같은 고결한 삶을 동경하며 살고 싶어 진다.)

<대상의 정확한 묘사>

포도('가람문선' 이병기) 

풀을 헐어 내고 포도를 심어두니/ 좁은 처마 안에 오르고 서린 넌출/ 그나마 보이던 하늘마저 가려 버린다./

퍼런 잎 짙은 그늘 살고 있는 퍼런 벌레/ 낮을 밤 삼아 곤히 든 잠 깨우치고/ 소 없는 벌소리 같이 소나기는 지나간다

 (감상: 현대시의 속성 중의 하나인 '대상의 정확한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다. 이병기 시인의 시의 묘사는 대상의 직접 표현으로, 한국 현대시의 높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자연에서 식물과 벌레를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정확한 묘사를 한다. 벌소리를 내면서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다 지나간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데나 정들면/ 못 살리 없으련 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다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쪼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묶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감상: 경건하고 진실한 어조로 참된 정서와 정신을 노래한다. '수구초심'이라고 여우가 죽을 때 그 머리를 고향 언덕을 향해 돌린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건 여우건 고향을 그리워하고 회귀하려는 습성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어처럼. 6,25 전쟁으로 시인이 돌아가려는 고향은 잿더미가 되고 쪼가리만 남았지만,  움막이라도 다시 지어 살아보자고 한다. 그래도 그곳에서 희망을 심고 흙을 일구어서 새 출발 해보자는 진정 어린 마음이다.

마치며: '시조 문학의 거목' 이병기 시인

작가는 사후에 자신이 남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의 작품에는 시대적 배경과 환경 그리고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활동한 시기와 문화적 특성이 깃든 '활동지역'이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기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임종을 하고, 또 그곳(전북 익산시 여산면 가람 1길)에 묻혀있다. 이것 또한 작가의 복이지만, 그 '지역'이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여겨진다. 초가집과 대나무 숲, 탱자나무, 배롱나무 등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자연은 '리리시즘'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그 흙과 자연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 또한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병기 시인은 수사학을 완성시킨 시인이다. 시어를 규정하는 것은 언어의 성향과 의미가 다 같이 좋은 어휘를  선택하는 감각이다. 시인은 일본 식민지에 대항하고 한국적인 것을 발굴하고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그 결과 시조의 예술적인 차원, 예술적인 가치를 더욱 상승시켰다. 술과 제자, 난을 사랑하고, 한말에 쇠퇴해 가는 우리의 고유문학인 '시조'의 부흥운동에 앞장서 시조문학의 맥을 잇게 한 '거목'인 것이다. 

식민지 후기의 운문 작업에 몰두한 시인들은 정지용, 윤동주, 이병기, 김광균,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의 작가들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병기 작시. 김국진 작곡. 바리톤 김우주. 피아노 김성희.

 

(참고문헌: 가람문선. 전라북도 익산시 2019. 구글.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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