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
영국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슬픈 생애와,
백마를 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목마를 탄, 슬픈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한잔의 술을 마신다.
그나마 그 목마마저 주인을 버리고 방울소리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또 한잔.
<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 낭송 박인희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감상: 버지니아 울프는 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정신질환과 염세주의의 '페시미즘' 주의자로 목숨을 끊었다. 숙녀도 6.25 전쟁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로, 백마가 아닌 달리지 못하는 목마를 타고 있다.
목마는 땅에서는 달릴 수 없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허공을 헤맨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헤매는 인간의 슬픈 운명이다.
소녀가 숙녀로, 늙은 여류작가 '버지니아'로 버텨가지만, 달릴 줄 기대했던 목마마저 허공을 헤매다 떠난다.
박인환 시인이 존경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과, '숙녀'의 서러운 이야기를 비통해하며 한잔의 술을 마신다.)
위스키를 마시고 떠난 목마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은 어디로 갔을까'
양복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말쑥한 외모와 180 cm의 장신, 말쑥한 차림으로 더 유명한 박인환 시인은,
생전에 '조니워커'를 좋아했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신다.
첫 잔은 과거를 위해.
두 번째 잔은 오늘을 위해,
내일? 그까짓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좋아하던 위스키를 마시며, 시인은 목마를 따라 '내일'로 떠나갔다
<사랑이란> 버지니아 울프. 시
사랑이란 생각이다
사랑이란 기다림이다
사랑이란 기쁨
사랑이란 슬픔
사랑이란 별
사랑이란 고통이다
홀로 있기에 가슴 저려오는 고독
사랑은 고통을 즐긴다
그대의 머릿결
그대의 눈
그대의 미소는
누군가의 마음을 불태워
온몸을 흔들리게 한다
꿈을 꾸듯 사랑에 빠지고
그대들은
그대들의 육체에, 영혼에, 삶에
그대들의 목숨까지 바친다
그리고
둘이 하나 될 때
아, 그대들은
한 쌍의 새처럼 노래한다
(감상: 사랑은 고통이지만 목숨까지 바칠 만큼 소중하다. 둘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소설가, 수필가, 비평가로 당대 최고의 모더니즘 작가이며, '의식의 흐름'을 활용한 서술의 선구자이며,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마치며
우리는 한 잔의 쓰디쓴 커피를 마시고라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과, 목마 타고 떠난 숙녀와, 박인환 시인의 짧은 생애를,
그리고 인생의 외로움과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인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생애와, 처량한 숙녀의 목마 방울소리와, 박인환 천재 시인의 속울음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 버지니아 울프 전집/ 추억의 향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