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비우는 11월
금년 끝자락을 알려 주는, 나무 두 그루가 빈 몸으로 나란히 서있는 11월!
아무것도 입지 않고 가슴을 딱 펴고 당당하게 계절을 알린다.
욕심을 모두 비우고 당당히 외롭게 서있는 나무.
여러분은 금년 한 해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달력을 넘겨가고 있는지.
무엇을 비우셨는지...
지금은 비우는 시간!
<11월의 어머니> 윤준경. 시
빈 옥수숫대를 보면 나는
다가가 절하고 싶습니다
줄줄이 업어 기른 자식들 다 떠나고
속이 허한 어머니
큰애야, 고르게 돋아난 이빨로
어디 가서 차진 양식이 되었느냐
작은애야, 부실한 몸으로
누구의 기분 좋은 튀밥이 되었느냐
둘째야, 넌 단단히 익어서
가문의 대를 이을 씨앗이 되었느냐
11월의 바람을 몸으로 끌어안고
들판을 지키는 옥수숫대
날마다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떠놓으시고
뚜껑에 맺힌 눈물로
집 나간 아들 소식을 들으시며
죽어도 예서 죽는다 뿌리에 힘을 주는
11월 들판에 강한 어머니들에게
나는 오늘도 절하고 돌아옵니다
(감상: 알이 꽉 차 모두 출가시켰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들이 잘 살고 있는지 항상 걱정이다. 11월 찬 바람의 들판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눈물로 살아가지만 모두 열심히 잘 살 거라고 믿으며, 마음을 비우는 11월의 어머니의 마음이다.)
<11월의 노래> 김용택. 시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 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롬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 납니다.
(감상: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지는 가을 저녁. 마음은 강을 건너 풀밭을 헤치고 당신에게 달려 가지만, 그 추억마저도 비워야 하는, 그래서 풀씨들을 떼어내 보지만 당신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가을도 가고, 해도 지고, 당신도 가지만 내 마음만 가지 못해 비우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시> 홍수희. 시
텅텅 비워
윙윙 우리라
다시는
빈 하늘만
가슴에
채워 넣으리
(감상: 아픈 추억 시린 추억은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 그리운 희망으로만 하늘에 채워 가슴에 넣겠다.)
마치며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외롭고 괴로운 일이 있다면, 모두 잊고 비우자.
좋은 일이 있으려고 괴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스산하게 파고드는 바람을 보며 우울해하지 말고,
청명하게 우리 마음을 씻어 주는 따스한 햇살과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11월을 웃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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