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상의 '금홍', 수필 "약수", 시 "이런 시"

e길 2023. 8.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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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홍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연민! 사랑은 순간이다

이상작가는 천재 작가로서 어두운 식민지시대에 돌출한 모던보이였다.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이상 작가는 난해한 시문과 띄어쓰기 거부 등 한국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었다.

 27세 나이로 승화했지만 3년을 '금홍'이라는 기생과 동거를 하며 사랑을 했다. 하지만 결별을 하게 된다. 

결별 후 이상 작가의 '수필'과 '시'로 작가의 심중을 표현한 작품을 감상해 본다.

 

출처: pixabay

<약수> 이상. 수필

 

바른대로 말이지 나는 약수(藥水)보다도 약주(藥酒)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술 때문에 집을 망치고 몸을 망치고 해도 술 먹는 사람이면 후회하는 법이 없지만 병이 나으라고 약물을 먹었는데 낫지 않고 죽었다면 사람은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려 듭니다.

 우리 백부께서 몇 해 전에 뇌일혈로 작고하셨는데 평소에 퍽 건강하셔서 피를 어쨌든지 내 짐작으로 화인(火印) 한 되는 쏟았건만 일주일을 버티셨습니다. 마지막에 돈과 약을 물 쓰듯 해도 오히려 구할 길이 없는지라 백부께서 나더러 약수를 길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친구 한 사람이 악박골 바로 넘어서 살았는데 그저 밥, 국, 김치, 숭늉 모두가 약물로 뒤범벅이었건만 그의 가족들은 그리 튼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먼저 해에는 그의 막내누이를 폐환(肺患)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은 미신이구나 하고 병을 들고 악박골로 가서 한 병 얻어가지고 오는 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내일은 우리 집에 초상이 날 것 같으니 사퇴(仕退) 시간에 좀 들러달라고 그래놓고 왔습니다. 

 백부께서는 혼란된 의식 가운데서도 이 약 물을 아마 한 종말이나 잡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 이튿날 낮에 운명하셨습니다. 임종을 마치고 나는 뒷꼍으로 가서 오월 속에서 잉잉거리는 벌 떼 파리 떼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물 진 작약꽃 이파리 하나 가만히 졌습니다. 

 이키! 하고 나는 가만히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또 술이 시작입니다. 

 백모는 공연히 약물을 잡수시게 해서 그랬느니 마니 하고 자꾸 후회를 하시길래, 나는 듣기 싫어서 자꾸 술을 먹었습니다.

"세 분 손님 약주 잡수세욧." 소리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 목롯집 마당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우러져서 서성거리는 맛이란 굴비나 암치를 먹어가면서 약물을 퍼먹고 급기야 배탈이 나고 그만두는 프라그마티즘에 견줄 것이 아닙니다. 

 

(금홍과의 만남과 이별 부분)

 

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안해가 되어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 얘ㅡ 이건 참 명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 동안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게으르지 않으면 부지런히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 게 또 마음에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병이 나서 신애로 앓으면서 나더러 약물을 떠 오라길래 그것은 미신이라고 그랬더니 뾰로통하는 것입니다. 

 

안해가 가버린 것은 내가 약물을 안 길어다 주었대서 그런 것 같은데 또 내가 '약주'만 밤낮 먹으러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같고 하여간 나는 지금 세상이 시들해져서 그날그날이 짐짐한데 술 따로 안주 따로 판다는 목로조합 결의가 아주 마음에 안 들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누가 술만 끊으면 내 위해 주마고 그러지만 세상에 약물 안 먹어도 사람이 살겠거니와 술 안 먹고 못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모르는 말입니다. 

 

(감상: 약수는 약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약주가 더 좋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약수가 몸에 약이 된다는 것은 미신이라고 말한다. 그 좋다는 약주를 마시다 '금홍'이를 만나게 되고 같이 3년을 살게 된다. 그러나 금홍은 게으르고 술만 좋아하는, 능력도 없고 약숫물 심부름도 안 하는 '이상'작가를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금홍'이 떠난 부분에서는 자책하며 겸손하게 힘없이 처량하게 진술하고 있다.)

(암치: 소금에 절인 민어.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

 

이상 작가는 '금홍'을 사랑했다. 작품에 금홍의 이야기를 쓸 만큼 잊지 못할 여인이었을 것이다.

 다음의 시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이상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시(時)> 이상. 시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 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들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 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감상: 이 시를 놓고 평이 분분하다. 돌은 '금홍'이 아니라는 등. '바바스'의 시선으로 감상하자면, 

'커다란 돌'은 사랑하는 금홍인데, 나 싫다고 집을 나가 험난한 생활을 하다, 새로운 애인인 어떤 '돌'을 만났구나. 이에 처량한 마음에 글을 하나 써본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가 그다지 참 사랑을 못해준 그대여, 평생을 잊을 수가 없다. 과분한 사랑이었고 항상 생각할 것이니, 내내 '예쁜 사랑' 하시길'.

 

"내 사랑을 뺏어간 그놈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이런 글은 찢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상 작가는 이 글을 찢지 않았다. 그 '돌'녀석에게 쪽팔리지만, 찢지 않고 남길 만큼 금홍과의 사랑이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며

이상 작가는 천재, 광인, 모던보이, 생소, 파격, 실험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김기림 시인이 '그가 죽은 후 한국의 현대문학은 반세기나 후퇴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다.

 그런 천재 작가도 사랑 앞에서는 무력함을 나타내며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는 괴로움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당시 일제 치하의 시대적 상황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사랑을 잡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다가, 떠나보낸 후  마음속으로 괴로워할 수도 있다.

 이상 작가는 난해하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일관했지만 '약수' 수필과 '이런 시'에서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평상시 작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사랑의 이별 후 글은 자신을 낮추고 자책하는 듯 지나간 추억을 겸손하게 되새김질하는 것 같다. 

 

남자들은 이상작가의 작품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잘해야 한다는 전통의 금기 '교훈'을 얻었으리라.

부지런하고, 약주보다는 약수를 더 좋아하고, 심부름을 잘하면서 말을 잘 듣는 그런 남친, 남편이 되어야 사랑받고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금홍'과의 이별 후.

이상의 '명수필'로 인정받는 '권태'를 이어서 업로드합니다. 폐병이 악화되어 평남 성천의 지인 집에서 요양하며 쓴 수필로 일상의 무료함을 날카로운 관찰력과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한 명수필입니다.)

 

(참고문헌: 김해경, '이상 선집'/ 매일신보 1936.3.26/나무위키/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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