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눈뭉치' 사랑 詩

e길 2023. 9. 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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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없이, 눈뭉치 녹기 전에 사랑하자

부끄럽게 살지 말고,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자는 시인과,

인생은 하얀 눈뭉치처럼 금방 녹는다는 시인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시인이 있다.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서시> 윤동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감상: '서시'는 윤동주(1917~ 1945)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이다.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죽는 날까지 세속적 삶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기원했다. 현실의 어둠과 괴로움 속에서 자기의 양심을 지키며 맑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젊은 지식인의 모습을 간결한 언어를 통해 보여준 시이다.

 

일제 치하 저항 시인으로서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자신의 부끄러움이 없는 조국 사랑과 시대적 양심을 잃지 않은 삶이 되자는 시인의 맹세이다. 시인의 약속대로 부끄러움 없이 훌륭하게 살다 갔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1945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차디찬 일본의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조춘(早春)> 문태준. 시

 

그대여, 하얀 눈 뭉치를 창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눈뭉치가 물이 되어 드러눕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뭉치는 하얗게 몸을 부수었습니다.

스스로 부수면서 반쯤 허물어진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게 웅얼웅얼 무어라 말을 했으나 풀어져 버렸습니다.

나를 가엾게 바라보던 눈초리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 접시 물로 돌아간 그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젠 내겐 의지 할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뭉치이며 물의 유골인 나와도 이제 헤어지려 합니다.

 

(감상: 내게 웅얼웅얼 무어라 말을 했으나 그 마지막 말마저 풀어져 들리지 못한 채 그대는 사라져 버렸고, 나는 의지할 곳 아무 데도 없이 이제는 나와도 헤어지려 하고 있다. 인생도 하얀 눈뭉치처럼 어느 순간에 녹고 만다. 거의 다 녹을 때 웅얼웅얼 뭐라 말을 했으나 이내 사라진다는 인생의 마지막 서글픈 모습이 보인다. 영원이 녹지 않는 것은 없으며, 나 자신과도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 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감상: '파'와 '밤'의 새싹이 금방 나오고, 아이가 악기를 불고, 처녀들이 꽃을 들고, 아주머니가 장에 갔다 오고, 할아버지가 뛰어와서 버스를 탄다. 섞어 놓았지만 인간 성장의 빠른 세월 속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보따리 속 파가 쑥쑥, 비닐 밤 보따리 밤꽃이 핀다'는 세월의 빠름을 멋지게 표현했다. 하루하루를 사랑하라.)

 

마치며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된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어서 삶이 아름다우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이 아름다워지려면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짧디 짧은 인생, 녹기 전에 사랑하며 살자.

 

(참고문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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