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부모와 30대 싱글 자녀, 캥거루 가족의 불편한 동거
30대 자식은 같은 주거 공간 안에 사는 ‘동거인’, 그 이상이다. 부모는 여전히 양육의 부담을 안고, 자식은 '애 취급'을 받는다. 자녀는 “월세 구하려 해도 너무 비싸고, 엄마 생활비 안 드렸으면 난 진작 독립했다"라고 항변한다. 부모는 “생활비 받아도 적자다. 손주라도 있으면 보람이라도 있지”라고 주장한다.
60대 이상 부모와 30대 이상 자녀 간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딸아, 아들아, 보아라
지금 너희들 방엔 옷이며 드라이기 등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너희들 아침 식사를 준비해도 그냥 그대로 식고 있구나. 차라리 안 먹는다면 일찍부터 준비라도 안 하지, 어쩔 땐 먹고 오늘처럼 그냥 가면 엄마 마음도 맥이 빠져 갈팡질팡 힘이 드는구나.
내가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것도, 제발 아침식사는 먹고 가라고 사정하는 것도 중, 고등학교 다닐 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 그땐 내가 젊기라도 해서, 허리도 무릎도 아직 괜찮을 때였어. 너희들이 대학 가고 졸업해서 취직만 하면, 그리고 결혼만 하면 이것도 다 끝이라 생각하고 너희를 위해 기꺼이 밥, 청소, 빨래를 했다. 다 결혼만 하면 은퇴한 네 아빠랑 세상을 즐기며 재미있게 여행이나 다닐 줄 알았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너희들은 서른이 지나고, 우리는 환갑을 넘겼다. 나는 아직도 너희 방을 청소하고, 먹을 밥상을 차리고, 너희들 속옷을 빨고 있구나. 어제는 청소를 하고 나니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구나. 나는 이제 할머니라고 불릴 나이가 됐다. 문득 죽는 날까지 이러고 사는 게 아닌지 정말 겁이 덜컥 나는구나.
생활비라고 주는 돈도 다 너희들 위해서 알뜰하게 절약해서 쓰는데, 요즘 물가가 보통 많이 오른 게 아니어서 몇 가지 장을 보면 거의 바닥이 보인다. 그래도 엄마는 너희들이 힘이 들까 봐 올려라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다.
너희들이 몇 시에 들어올지, 아침은 챙겨줘야 하는지 걱정하는 것도 이제 안 하고 싶다. 니들 나이 때 나는 집 걱정, 남편 걱정, 자식 걱정 하면서 살았다. 너희한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제발 니들 한 몸이라도 건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빠른 날에 독립해서 나가주길 바란다.
※추신: 이번 달 연차는 며칠, 며칠이라고 했지? 새벽에 늦잠 좀 자보려고.
-너네 가정부 엄마가-
부모님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만 들어가면 진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 등록금에 교재비, 커피 값까지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도 영 감당이 안 되더군요. 취직만 하면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나만의 아늑한 방을 갖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생활하는 걸 꿈꿨지요. 취업한 지 몇 년 만에 ‘독립’의 꿈을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무리였어요. 이자에 생활비에 제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 결혼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문제는 결혼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나라에서 변변한 지원책도 없고...
연애할 땐 여전히 절 고등학생 취급하는 아빠, 엄마 눈치 보느라 집에 늦게도 못 들어왔어요. 남자친구랑 여행 한번 갈라치면 온갖 거짓말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했고요. 엄마가 제 빨래며, 청소며, 밥이며 다 해주시는 게 눈치 보여서 매월 용돈까지 꼬박꼬박 챙겨 드리지 않았던가요?
서른 중반이 됐을 때 독립하려고 했어요. 한데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고 보니 제가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더군요. 아빠, 엄마 용돈 드리지 말고, 그것까지 모았어야 했나 후회가 듭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전세 자금 좀 보태주시면 안 될까요? 내 친구 영미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얼마 전 독립했어요.
※추신: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바지 좀 꼭 다려놓으세요!
-기죽은 딸 올림-
마치며: 결혼 비용, 주택 자본 등 사회문제
시집, 장가보내면 다 키운 거라고 생각해서, 자녀들이 독립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느긋한 노후를 보내려던 계획도 세웠지만 부모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혼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30대가 늘어나면서 사회인이 된 자식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30대 자녀들은 늦어진 취업과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독립을 미룰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취업을 했다고 해도 바로 집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형 주택의 물량이 부족한 데다, 전월세의 자본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부모와 같이 산다는 이유 하나로 캥거루족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몰상식한 생각이며, 캥거루족의 뜻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에게 전적으로 자신의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나무위키/ 네이버/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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