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상화 '빼, 들, 봄'과 윤봉길 의사의 '유언장'

e길 2023. 8.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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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 출생으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문학 평론가, 교사, 아마추어 권투선수'였다. 시인은 낭만주의에서 식민지 현실에 깊은 성찰로 직접적인 저항시를 썼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나의 침실로'는 이상화 시인의 2대 걸작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 초기 시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윤봉길의사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읽고 가만히 앉아서는 조국의 독립이 힘들다며, 조금이라도 독립운동의 힘이 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출처: 교보문고

윤봉길 의사의 결단에 영향을 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윤봉길 의사는 이 시를 읽자마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고 한다. 한참 동안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으며, 큰 감명을 받은 윤의사는 조국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사내대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장부출가생불환'이라는 결의를 다지고 중국으로 떠난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거점이 중국이었으며, 항일 운동은 중국, 만주 둥에서 진행되었다.

 

장부출가생불환. 윤봉길.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전쟁승리 기념식에서, 일본 군인 1만 명, 일본인 등 총 참석인원 3만 명 앞에서 도시락, 물통 폭탄으로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등의 사망,  군사령관, 사단장 등 일본 주요 인사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현장에서 잡혀 피투성이가 된 윤 의사는, 그 해 12월 일본에서 24세 (1908~ 1932)의 젊은 나이에 총살형을 당했다.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

 

지금은 남의 땅 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담은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 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 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

발목을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ㅡ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감상: 1926년 '개벽'지 6월호에 발표된 시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애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는 시다. 나라를 잃어버린 한과 저항의식을 주축으로 하여 식민지 치하의 가난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 아낙네들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없는 반항의식을 말하고 있다. 동족애와 식민지적 비애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저항의식을 표현한 시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줄 것이다. 봄을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몸부림으로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논길, 머리털, 도랑,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 부드러운 이 흙' 등은 '풍요롭기 때문에 더욱 빼앗길 수 없는' 민족의 삶과 조국의 땅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보물 568-2호)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어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학자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감상: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 의거를 하루 앞둔 날 쓴 유언장이다. 윤봉길 의사는 어리디 어린 젖먹이 두 아들에게 '두 병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조국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윤 의사는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1녀 2남)를 남겨둔 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난 것이었다.

 24세의 아버지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식들에게 담담한 유언을 하고 있다.)

마치며

문학의 힘은 끝이 없다. 정의로운 글 한마디 한마디가 정의를 움직이게 하며, 올바른 길을 가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윤봉길 의사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말이 그렇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과 부인을 남겨두고 돌아오지 못할 사지(死地)로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 이겠는가.

 8.15 광복 주간을 맞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희생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조의와 존경을 표하며 그 뜻을 잊지 않고 기려야 하겠다.

 

(참고문헌: 나무위키/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윤봉길 의사 일대기, 범우사/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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