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월의 따끈따끈한 "시(時)"

e길 2023. 8. 10. 00:01
반응형

연일 뜨거운 날씨다.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팔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맑고 푸른 바다향기, 산 계곡의 졸졸졸 노랫소리가 그리운 날들이다.

뜨거운 여름 따끈따끈한 8월의 시를 감상해 보자.

뜨거운 여름 '고추'

'두보'의 짜증 나는 날

중국의 시성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인 두보(杜甫, 712~770)는 벼슬길에 오르려고 애를 썼지만 두 번이나 과거에 낙제했다. 이백, 고적 같은 시인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유랑하며 시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뒤늦게 마흔네 살에 벼슬길에 올랐지만 전란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잠깐의 벼슬 때 지은 시를 보면, 여름 더운 날은 아무리 시성(詩聖) '두보'라도 괴로워서 힘들어했다.

 

<날씨는 찌는데 서류들은 쌓이고> 두보. 시(김의정 역)

 

칠월 엿새 초가을인데도 찌는 더위에 시달려

밥상을 마주 하고도 도저히 못 먹겠네

안 그래도 밤마다 전갈에 물릴까 걱정인데

어쩌자고 파리떼가 유난스러운지

미칠 것 같은 이 관복,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데

서류들은 어쩌면 이리도 빨리 쌓이는 것이냐

남으로 바라보니 푸른 소나무 계곡에 서려 있는데

아 아, 맨발로 얼음장 밟아볼 날 있을 것인가 

 

(감상: 두보가 마흔일곱에 쓴 시편인데, 당시 냉방시설도 없는 옛날에, 점잖게 관복을 걸치고 사무를 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더웠겠는지 짐작이 가고 이해가 된다. 더워 죽겠는데, 전갈 걱정하랴 극성인 파리떼를 피하랴 정신이 없는데 서류는 밀려오고, 아무리 두보라도 고함치고 싶을 것 같다.

 두보 시인은 712년 당나라 허난성 출신이다. 중국 최고의 시성(詩聖)으로, 유교적인 색깔로 사회풍자와 교훈적인 작품을 주로 썼다. 시대의 아픈 현실의 주제가 많았다. '두시언해' 등 1.400 여수의 작품을 남겼다.) 

 

따끈따끈한 8월의 시(時)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이채. 시

 

한 줄기 바람도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가 어디 있으랴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름 소나기처럼

인생에도 소나기가 있고

태풍이 불고 해일이 일 듯

삶에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인생이 짧든 길든   

하늘은 다시 푸르고

구름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여,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물소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고

바람소리에서

삶의 고뇌가 묻어나는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녹음처럼 그 깊어감이 아름답노라

 

(감상: '물소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고 바람소리에서 삶의 고뇌가 묻어나는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녹음처럼 그 깊어감이 아름답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중년이 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따뜻한 감동과 함께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중년은 서글픔이 아닌 아름다움이며 세월 속에 고뇌가 깊어진 8월의 짙은 녹음과 같이 아름답다고 예찬하고 있다.

 이채 여류시인은 1961년 경북 울진 출생. 시집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중년이라고 이러면 안 됩니까', '중년의 당신, 어디쯤 서 있는가'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8월> 안재동. 시

 

너만큼 기나긴 시간 뜨거운 존재 없느니.

뉜들 그 뜨거움 함부로 식힐 수 있으리.

사랑은 뜨거워야 좋다는데

뜨거워서 오히려 미움받는 천더기.

 

너로 인해 사람들 몸부림치고 도망 다니고

하루빨리 사라지라 짜증이지.

그래도 야속타 않고 어머니처럼 묵묵히

삼라(森羅) 생물체들 품속에 다정히 끌어안고

익힐 건 제대로 익혀내고

식힐 건 철저히 식혀내는 전능의 손길.

 

언젠가는 홀연히 가고 없을 너를 느끼며

내 깊은 곳 깃든, 갖은 찌끼조차

네 속에서 흔적 없이 식혀버리고 싶다.

때 되면 깊고 긴 어둠 속으로 스스로 사라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

 

(감상: 뜨거운 8월의 여름은, 천덕꾸러기처럼 미움받기도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자연의 이치대로 다 하는 능력자라고 이야기한다. 또 여름은 가겠지만 내 찌꺼기까지 갖고 가라는, 그러면서 8월은 가장 화끈한 달이라며 연민을 갖는다.

 1958년 경남 함안 출생. 시집 '별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껍데기', '내 안의 우주' 등이 있다.)

 

<8월의 시> 오세영. 시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감상: 8월은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달이다. 윤달이 든 올여름은 유난히 길 것 같다. 그럼에도 시인은 언젠가는 불볕더위가 끝날 것이라는, 그래서 가을 단풍을 생각하고 기대하며 여유를 갖고 살자고 한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오는 것'이라는 세월은 가고 온다는, 금방 반복이 되는 세상살이에 조급하게 살지 말고, 여유 있게 뒤 돌아보고 앞도보며 유유자적 살자.

 오세영 시인은 1942년 전남 영광 출신이다.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

 

마치며: 따끈따끈한 8월

8월이 누구에게나 오듯이, 8월은 누구에게나 덥다.

뜨거운 여름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시인들의 주장)

'두보'시인,  더운 여름날이 짜증 난다고 한다.

'이채' 시인,  중년은 여름 깊어가는 녹음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안재동' 시인, 여름은 뜨거운 천덕꾸러기지만, 익히고 식혀내는 전능의 손길이라 한다.

'오세영' 시인, 피고 지는 꽃과 오가는 파도가 만나듯 인생도 가는 것이 오는 것, 오는 가을을 생각하자.

 

여름은 덥고 짜증 나지만 우리네 인생은 푸른 여름산처럼 아름답고, 뜨거운 여름은 익히고 식히는 자연의 섭리이며, 인생은 금방 가니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자.

 

(8월 9일 다녀온 '북한산 진관사 계곡 편'은 태풍 '카눈'이 지나간 후 업로드 됩니다)

 

(참고문헌: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