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시인, 짧은 생
'민족 시인' 김소월과 '현대 시의 아버지' 정지용은 1902년 동갑내기 시인이다. 두 시인은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고, 불행하게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월(素月, 흰 달) 시인은 평북 구성군 출신으로 민족의 토속적인 한과 정서를 담아낸 시를 썼다. (33세 사망)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이미지즘 시인이다. (48세 사망)
가슴 아프게도 동시대를 짧게 살다 간 두 시인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어려운 짧은 삶에서 그마저도 불행한 일들이 많았다.
두 시인의 슬픔이 어려 있는 작품들을 감상해 본다.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 강연'
김소월 시인은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통해 인간 회복을 호소한 민족 시인이다.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는 옛 가락에 의탁해 동심을 드러내고,
정지용 시인은 우리말을 찾아서 닦고 조직하는데 시 인생을 바친 20세기 최초의 직업 시인이다.
정지용 시인의 '말'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면에서 자연스러운 인지의 충격을 준다.
(동양일보 2016년)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감상: 김소월 시인은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산욕열로 돌아가셨고, 어린 누나는 그런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함께 병들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10살 때 듣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린 소월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청개구리' 설화처럼, 낳을 때 불효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진짜 어머니를 몰라 불효했다고 자책한다. 10살 때까지 키워주던 '숙모'가 어머니라 여겼던 소월은, 죽은 어머니에게 또 불효를 했다고 자책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 때문에 돌아가신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싶은 강변의 모습을 시로 그렸다.
자신이 죽어서라도 함께 살고 싶은 '강변'에서 살자고 한다. ('강변'은 거꾸로,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엄마의 유언으로, 물가에 묻어 주라 하면 '산'에 묻어 주겠지 했는데, 정신 차린 청개구리가 엄마 유언을 따른 곳이다. 김소월의 고향이 '청개구리' 설화의 고장이라고 한다. )
김소월 시인의 특징적인 작품으로, 전통적이고 민요적 율격인 3 음보를 활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10살 때 알았던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 10살 소년의 화자를 내세워서 시로 표현하고 있다.)
<말> 정지용. 시
말아, 다락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 마는
너는 웨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 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감상: 말은 짐승이지만, 밤마다 달을 쳐다보며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작품이다. '다락같은 말'은 다락의 높고 어두컴컴한 이미지가 말과 닮았다는, 시인의 어릴 적 유년시절 기억에서 유추된 표현이다.
정지용 시인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김소월의 '초혼'
김소월 시인은 14세 때 할아버지의 친구의 손녀 '홍단실'과 결혼한다. 오산학교에서 '시'의 스승 '김억'과 사상적 스승인 '조만식'을 만나는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사람 '오순'이라는 여인과 만나 교제하지만, 이미 결혼한 김소월 시인이어서, '오순'은 19살 나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의처증이 심한 남편의 학대에 견디지 못하고 22세에 사망한다. 시인은 이후에 슬픈 충격으로 많은 시를 쓰게 된다.
김소월 시인은 '오순' 장례식에 참석한 직후 '초혼'이라는 시를 썼다.
'초혼'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서 그 사람을 소생시키기 위한,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고복 의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초혼> 김소월. 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감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과 충격을 표현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화자가 돌이 되어서, 죽어서라도 변치 않고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다. )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지용의 '유리창 1'
<유리창 1> 정지용. 시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감상: 시인은 어두운 밤 창가에 서서 죽은 자식을 그리워하며 유리창을 입김으로 불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입김 자국이 죽은 아이의 모습처럼 나타나며 슬픔에 빠진다. 그러면서 아이의 모습이 더 잘 보이도록 유리창을 닦는다. 여기서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단절을 의미하면서, 또 이어주는 교감의 매개체이다.
유리창을 매개로 하여 시인은 죽은 아이의 환상을 대할 수 있는가 하면, 유리창의 단절 때문에 그 환상을 현실로 끌어올 수 없다. 유리창은 현실과 환상을 매개해 주면서 다시 환상과 현실을 갈라놓는 모순된 존재이다. 폐병으로 죽은 아이를 산새처럼 날아갔다고 표현한다. '물먹은 별'은 울면서 별을 쳐다보니 별이 눈물 속에 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대단히 슬픈 일인데 이 시는 엄격히 절제되어 있다.
이 시는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의, 정지용 시인의 문학적 특징이 있는 작품이다.
마치며
소월시는 슬프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고,
정지용시는 슬퍼도 절제하면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두 시인은 동갑내기 시인이면서 시풍은 서로 달랐지만, 우리나라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두 시인은 아픔도 많았지만 다수의 훌륭한 작품을 남겨, 우리 문학사에 두고두고 칭송받는 훌륭한 시인으로 남을 것이다.
(참고문헌: 위키백과/ 나무위키/ 김소월 시집/ 정지용 전집 1-시/ 네이버)
[8월 6일 일요일에는 '청청 백백', 도선사 우이동 계곡이 업로드됩니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의 따끈따끈한 "시(時)" (0) | 2023.08.10 |
---|---|
여류시인 설도의 "동심초" (5) | 2023.08.09 |
이상의 수필, 여름 날의 "권태" (1) | 2023.08.02 |
이상의 '금홍', 수필 "약수", 시 "이런 시" (1) | 2023.08.01 |
뜨거운 날의, 겨울'시' (0) | 2023.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