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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핀 꽃 '바다'
소월의 고향은 평북 정주이며, 산 아래 바로 집이 있었으며 좀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 다녀온 후 산 위에 올라가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소월의 아버지가 정신질환 환자여서 집안은 경제적으론 부유했지만 분위기는 어두웠고,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어린 소월은 학교 다녀오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맞는 것을 보기 무서워, 뒷 산에 올라가 먼바다를 바라보곤 하였다. 바다는 늘 하얗게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하얀 꽃밭같이 보인 이유를, 겨울날 하얀 눈이 내리며 바다에 닿는 즉시 눈이 녹는 것을, 눈이 죽어서 꽃으로 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하였다. 늘 바다를 보면서, 갈 수는 없지만 먼 이국을 꿈꾸었다. 그런 외국에 대한 갈망이 소월로 하여금 외국어에 심취하게 하여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한자에 능통하게 되었다. 특히 '김억'이 소개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편들은, 재래의 전통적 시가 형식으로 부터 새로운 근대적 호흡과 율격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소월의 서구 상징주의 시를 비롯한 외래 시의 영향은, 김억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소월의 세련된 감각과 구어체, 근대적 어법은 서구시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탐색과 수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의 이러한 외래시의 적극작 탐색은 전통성애 대한 주체적 계승이 전제되고 있기에 가능했다.
'타고르'를 타고 넘다
우리는 김소월 시인하면 전통적 서정시의 민요적 시인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소월은 그 당시 어느 시인보다 외래적 영향으로 외국의 시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면모를 보여준 시인이었다. '타고르'를 받아들이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타고르는 여성적 온유함과 생명 감각을 산문적 문체로 노래했으며, 여성에 대해 참다운 가치로, 부드럽고 온화한 것이 대지룰 이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월의 시 세계에서 여성상은 대지적 모성과 생명가치의 신비가, '님'으로 표상되어 경건한 어조로 노래한다. '님'은 내게 살 수 있는 아늑한 자리를 깔아주시고 힘을 주시는 절대자이다. 타고르의 시적 정조와 감각은 김소월의 여성적 화법과 서정의 울림을 내밀하게 심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해석된다. 그래서 어둡고 찬바람 불고 새벽이 오지 않아도 이를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의지가 되어주는 절대적 대상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구원과 소망의 절대자로써 '님'에게 저를 잠들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세계 조선 시인
소월은 우리의 전통민요를 자신의 시적 자산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시적 개성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민요 시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본 것은, 체험적 생활, 민요적 리듬, 향토적 소재,여성적 정감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세련되고, 자유로운 시적 개성의 구현은, 한시 전통과 민요조 서정을 서구 자유시의 감각과 창의적으로 융화시키면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민요 시인이 아니라, 세계 조선 시인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김소월의 시가 서구의 어느 시보다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앞서는 글로벌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근대 초기 애국, 계몽, 자유 등의 공리주의 문학관의 계도적 교훈과 저만치 거리를 두면서, 조선적 근대 자유시를 완성해 나갔던 김소월의 시적 양식이 오히려 누구보다 우리 인간의 자유를 호소하는 미학적 가능성을 성취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김소월의 시사적 가치는 자유시의 본령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전해 준다는 점에서 새삼 더욱 높은 빛을 발하며, 민요의 역동적인 집단성을 자신의 창작 기법으로 원용하여 간절한 내면 심리와 상황을 밀도 높게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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